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북 제재와 관련해서 미국의 요구대로 하면 남측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대북 제재를 방어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5월 22일 출간한 창비 2020 여름호 ‘6.15 20주년 기념 대담’에서 이처럼 밝혔다.
임 전 실장은 2018년 이후 남북관계가 진척되지 않는 원인을 2가지로 해석했다.
“첫 번째는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 없이 끝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남북이 양자 합의 사항을 더 적극적으로 실행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임 전 실장은 두 번째 이유를 더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임 전 실장은 북미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로 이끄는 데 결정적이었다 하더라도 남북이 풀어야 할 문제를 뒤로 미루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고 마찬가지로 비중 있게 추진했어야 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임 전 실장은 “특히 대북제재와 관련해서 2016~2017년에 이루어진 대북제재들이 남북관계를 매우 크게 제약하고 있지만 필요하면 (유엔) 제재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개진하며 국제여론을 환기시키고 또 제재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은 과감하게 해가면서, 북미 간의 문제가 잘 풀리도록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벽을 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임 전 실장은 앞으로 북미 관계가 어느 시점에서 풀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진척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결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 전 실장은 대북 제재와 관련해서 남측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전 실장은 “미국은 제재의 판정 기준을 월경(越境)으로 한다. 즉 물자가 넘어가면 무조건 제재 대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규제하려고 한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제재의 기준은 이전이라야 한다. 제재 물품을 이전해준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단순히 갔다 오는 것은 제재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안 된다고 해서 말 문제는 아니다. 그럼 아무것도 못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산림, 철도·도로 연결이든 진행할 수 있다. 지금처럼 제재를 방어적으로 해석하면 절대로 남쪽이 주도적인 역할 할 수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즉,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진척시키기 위해서는 제재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미국에 입장을 내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임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답방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임 전 실장은 특히 2018년 5월 26일 판문점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처럼 교착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임 전 실장은 지난 3월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이 남측에 던진 메시지를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김여정 제1부부장은 북의 자위적인 군사훈련을 한 것에 대해 비판한 청와대를 향해 “전쟁연습놀이에 그리도 열중하는 사람들이 남의 집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데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임 전 실장은 “북이 스스로 필요한 안보 상황에 조치하는 것까지 우리가 문제 삼으면 남북관계는 풀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심플하게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북의 재래식 무기 시험 발사할 때마다 문제 삼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한 임 전 실장은 2018년 9월 평양회담과 군사합의 과정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현 국무부 부장관)가 남북 대화에 제동을 건 사실도 공개했다.
임 전 실장은 "그 무렵 여름, 비건 대표가 임명됐는데 자기가 업무 파악을 해 '오케이' 하기 전까지 (남북 대화를) '올스톱'하라는 것이었는데,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비건이 들어오기 전에 도장을 찍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임 전 실장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이 합의 없이 끝난 것에 “여러 스캔들로 미국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몰린 환경이 있지 않았나"라며 "하노이로 가기 전에 미국 의회, 정부, 조야 등 사방에서 '배드딜'보다 '노딜'이 낫다고 압박한 상황이 결국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임종석 전 실장은 지난 1일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임 전 실장은 취임사를 통해 "북방경제와 평화경제의 새 길을 열고 남북을 잇는 작은 다리가 되고자 하는 게 경문협의 비전"이라며 "국제 질서가 어지러울 때 담대한 비전을 내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경문협은 지난 2004년 장기적인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세워진 비영리민간단체로 앞으로 남북 교류 사업 등을 활발히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