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6일, 군 기무사령부가 2017년 촛불정국에 대한 위수령과 계엄령 선포를 검토했다는 문건이 발견되면서 정국이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가 공개한 계엄령 세부계획 문건에는 비상계엄 선포문과 계엄포고문이 작성되어 있다. 이로써 지난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선고 당시 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의 탄핵소추가 기각 또는 각하 될 경우 위수령과 계엄령을 선포할 계획을 세웠음이 드러났다.
위수령은 군부대가 해당지역의 행정부와 협의해 치안을 유지하라는 대통령령이며 계엄령은 군이 완전히 지휘통솔까지 장악하는 명령이다. 당시 기무사령부는 계엄 포고문을 미리 작성하였고 구체적 부대투입까지 계획하였다. 사실상 계엄령 선포 직전까지 들어갔던 것이다.
기무사령부의 계엄선포 계획은 1980년 5.18 광주의 계엄군 진주를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재현하겠다는 대국민 탄압계획이다.
1979년 전두환 신군부의 12.12 쿠데타 이후 1980년 5.17 비상계엄령 확대로 광주에 공수부대가 들이닥치며 광주시민들의 피의 항전이 시작되었다. 만일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탄핵을 기각하였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전국의 1700만 촛불시민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순응해 박근혜를 다시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생업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0이었다. 그땐 1700만이 아니라 5000만 국민들이 남녀노소 손에 손을 잡고 광화문으로 몰려나왔을 것이다. 광화문의 촛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규탄하며 박근혜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런 정국에서 군 기무사령부는 서울을 비롯한 주요 행정구역에 군부대를 투입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문건에 따르면 군은 청와대와 광화문에 30기보사단과 9공수여단을 전개시키고, 그 외 주요기관에 8기갑보병사단, 11기보사단, 20기보사단, 26기보사단, 수도기보사단과 1·3·7·11·13공수여단과 707 특수임무대대를 서울에 동원하고, 각 광역자치단체에 동원할 사단과 특수전부대도 명시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계엄이 선포된 전 지역에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반인의 야간통행금지를 규정하였고 차량운행까지 금지하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부대가 시내에 진출하면 어떻게 되었겠나. 분노한 시민들은 군과 충돌을 불사하였을 것이다. 5.18 학살광란극이 전국적 판도에서 벌어질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기무사령부의 계엄선포 계획은 5.16 쿠데타, 12.12 쿠데타를 재현한 정권찬탈을 노린 명백한 반역이다.
이들은 KBS와 YTN을 비롯한 언론사에 보도검열단을 파견해 보도를 검열할 계획을 세웠다. 제일 먼저 언론부터 재갈을 물리려 하였던 것이다. 기무사령부의 계엄계획에는 정부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현행범으로 사법처리하는 국회의원 체포계획까지 들어가 있었다. 우리나라 법은 재적 국회의원의 과반이 찬성할 경우 계엄해제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군 계엄 문건에는 진보성향 국회의원을 160여명으로 분류하며 계엄령을 반대할 국회의원을 사전에 체포해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지 못하게끔 기도하였다. 나아가 이들은 계엄 선포 시 조치사항으로 국방부 장관은 주한 미국대사를 초청해 미국 본국에 계엄 시행을 인정하는 데 협조하도록 했다. 이는 1980년 5.17 비상계엄령 확대 당시 신군부의 행태를 연상케 한다.
애당초 비상계엄령을 군 정보를 관할하는 기무사령부가 검토하는 것부터가 맞지 않는 처사였다.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은 2017년 2월 18일부터 2주간 당시 한민구 국방장관의 지시로 계엄문건을 작성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계엄령은 기무사령부가 아니라 합동참모본부에서 검토하는 것이 맞다. 게다가 기무사령부의 비상계엄령 계획에는 계엄사령관으로 군 서열 1위인 이순진 합참의장을 배제하였다. 이순진 합참의장에게는 계엄문건에 대한 보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은 군 서열 2위인 장준규 육군 참모총장을 앉히려고 하였다. 이는 군 지휘체계를 무시한 발상이다. 나아가 탄핵 선고가 있던 3월 10일,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청와대를 방문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계엄에 투입되는 군부대들은 모두 육군부대들인데 반해 이순진 합참의장은 우리 군 최초의 해군출신 합참의장이다. 육군출신 장성들이 해군을 배제하고 정권찬탈을 노렸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쿠데타 세력의 하극상은 1979년 12.12 쿠데타 때도 있었다. 당시 군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자기 상관인 정승화 참모총장을 강제연행하면서 쿠데타를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기무사령부가 계엄령을 준비한 것은 월권이며 노골적인 정권찬탈, 반란음모다.
이 사건은 군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 군이 대국민 탄압에 나서며 정권찬탈을 노린 반란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심각한 정권찬탈에 가담한 자들은 전원 엄정 사법처리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한 세력이 바로 5.16 쿠데타,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다. 이번 군 쿠데타에 가담한 자들이야말로 적폐 중에 적폐라고 할 수 있다.내란음모는 매우 심각한 범죄이므로 관련자 모두 구속수사하는 것이 맞다. 군적폐 세력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므로 이번 사건 가담자들을 철저히 발본색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벌써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미국으로 나갔다는 보도가 있다. 이러다간 관련자들의 사법처리도 유야뮤야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들 전원을 엄정히 사법처리하여 민주국가에서 정권은 군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똑똑히 각인시켜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사건대응은 전형적인 용두사미로 흐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건 초반 보고를 받고 격노하였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송영무 국방부장관에게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지시하였다. 7월 25일 군검합수단은 기무사를 압수수색했고, 8월 5일에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과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문재인 정부는 군부에 온갖 관용과 용서를 있는 대로 끌어 모아 베풀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석구 기무사령관을 해임하고 육사 출신이 아닌 남영신 육군특전사령관을 임명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의 기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해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창설 계획을 밝혔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기무사 댓글공작 사건, 세월호 민간인 사찰, 계엄령 문건 작성 등 불법행위 관련자를 원대복귀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들 중 누구도 사법처리 받은 이들은 없다.
기무사를 해체수준으로 개편하더라도 그 인물들이 그대로 들어가게 되면 변하는 것은 전혀 없게 된다. 우린 이미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도 바꿔보고 국가정보원으로도 바꿔보았지만 변한 것은 없지 않나. 적폐인물들에 대한 사법처리와 인적청산이 기본이다. 그들을 권좌에 그대로 둔 채 시스템을 바꾼다고 민주주의가 확립될 가능성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라도 사건의 심각성을 똑똑히 인식하고 기무사령부의 계엄계획에 관여하였던 군적폐세력들을 엄정히 사법처리하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