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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232] 한일관계 속도전, 왜 이러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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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3-15 17:2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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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232] 한일관계 속도전, 왜 이러나 ①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3월 15일 서울 


1. 한일관계를 속도전으로 가져가는 미국

 

지난 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징용 대법원판결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나 정부는 국내 재단이 대신 배상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하였다. 박 장관은 국내 의견 수렴과 일본과의 협의 결과를 토대로 결정했다고 하였다. 배상금을 대신 지급할 국내 재단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으로 재단 기금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로 마련한다고 한다. 죄는 일본 기업이 저질렀지만 배상은 한국인이 하겠다는 결정이다. 박 장관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혔다. 

 

정부 발표가 나오자 각계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일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국이 일방적으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여론도 들끓었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3월 첫째 주에 42.9%였던 윤 대통령 지지율이 둘째 주에 38.9%로 무려 3% 포인트나 떨어졌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지지율은 36%에서 34%로 떨어졌다. 또 정부의 강제 동원 해법을 반대하는 의견이 59%로 찬성 35%를 훨씬 앞섰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7일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취임 초부터 외교부에 해결 방안을 주문했고 그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통해 우리 정부의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국민들께 약속한 선거 공약을 실천한 것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인지해달라”라고 하였다. 물러설 뜻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대통령실은 12일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는 명패를 부각하며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영상으로 공개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7일 보도를 통해 윤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방한한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를 만났을 때 “지지율이 10%까지 떨어지더라도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라고 말했음을 밝혔다. 또 머니투데이는 7일 한 여권 관계자 말을 인용해 “윤 대통령이 한번은 식사 자리에서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할 일은 하겠다’고 하더라”라고 보도하였다. 

 

이를 보면 윤 대통령도 정부의 강제 동원 해법이 지지율을 폭락하게 할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처럼 밀어붙인 것은 자기 지지율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요구임은 쉽게 알 수 있다. 

 

한국 정부가 강제 동원 해법을 발표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시각으로 한밤중에 환영 성명을 발표해 “오늘 발표된 한일 간 강제 동원 피해 배상안은 미국과 가장 가까운 두 동맹국 간의 협력과 파트너십에서 신기원적인 새 장을 여는 일이다”라고 극찬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밤중에 성명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미국이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말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도 각각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통령부터 국무부, 백악관, 주한 미 대사까지 모두 나서서 한국에 관한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나를 비롯해 국무부 고위 관료들이 이 중대한 파트너십에 많은 시간과 집중적인 노력을 투입”했다고 하여 이번 사건의 배후에 미국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또 백악관은 곧바로 윤 대통령을 4월 26일 국빈 초청한다고 발표했다. 마치 ‘큰일’을 해냈으니 치하라도 하겠다는 분위기다. 

 

이처럼 이번 강제 동원 해법 발표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를 받은 윤 대통령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결과라 하겠다. 

 

2. 미국이 말하는 한일관계 ‘개선’의 의미

 

미국은 강제 동원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한일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나 미국이 말하는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것은 한국 국민이 원하는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 국민은 일본이 과거사를 사죄하고 충분히 배상하며, 독도 영유권 주장을 내려놓고 군국주의화를 멈추며, 수출규제를 푸는 것이 한일관계 개선이라 여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나 미국이 말하는 한일관계 ‘개선’은 군사동맹을 맺는 것이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환영 성명에 노골적으로 담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도 나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고 발전시켜 나가길 희망한다”라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 미국이 바라는 한일관계 ‘개선’은 결국 한·미·일 삼각동맹을 실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양국 간 조치가 완전히 실현될 때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향한 우리의 공통된 비전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이란 반중 전선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중국을 반대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을 빨리 구축하자는 게 미국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강제 동원 해법 발표의 배경에 관해 6일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나아갈 길은 결국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연계 상에서 안보를 확실하게 하는 방향이라는 점을 확실히 했고 그런 차원에서 상당히 훼손된 한일관계를 빨리 정상화하고 한·미·일 3국 공조를 정상화하는 것이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 안에선 상당히 핵심적 부분”이라고 하였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니 미국 편에 확실히 서서 한·미·일 삼각동맹을 실현하는 게 안보를 지키는 길이며 이를 위해 일본에 굴복했다는 말이다. 

 

미국이 한·미·일 삼각동맹 구상을 세우고 추진한 건 수십 년도 더 된 얘기다. 한·미·일 삼각동맹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그래도 미국의 요구에 따라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갑자기 미국이 ‘급발진’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심각한 경제 문제가 있다. 

 

3. 파국으로 가는 미국 경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예측해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명예교수는 최신 저서 『초거대 위협』(박슬라 역, 한국경제신문, 2023.)에서 지금이 1930년대 대공황과 1970년대 고물가 경기 침체(스태그플레이션) 당시보다 형편이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18일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주요한 새로운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이번 경기 침체는 짧고 얕은 것이 아니라 깊고 장기화할 것”이라고 하였다. 올해 3월 3일에도 한 방송에 출연해 올해 스태그플레이션형 ‘퍼펙트 스톰’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경제는 올해 1/4분기가 지나기도 전에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기준금리를 미친 듯이 올려 물가상승을 둔화시켰다고 평가한 미국은 2월 금리 인상 폭을 낮췄다. 계속 금리를 높이면 경기 침체가 오기 때문에 속도 조절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3월 7일(미국 시각)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물가상승을 잡는 과정은 멀고 험난한 길이 될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했다. 2월에 금리 인상 폭을 낮춘 게 실수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10일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갑자기 파산하고 이틀 후 시그니처은행도 문을 닫으면서 연준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버렸다. 브래드 거스트너 알티미터 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두 은행 파산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 고문은 지금 금리 인상을 중단하면 고물가 경기 침체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이어지는 사이에도 전 세계 금융주는 폭락을 이어가 이틀 만에 시가총액 608조 원 이상이 사라지고 말았다. (「SVB 붕괴에 세계 금융주 급락…이틀 만에 시가총액 608조원 증발」, 연합뉴스, 2023.3.14.)

 

물론 미국 경제 위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미국 경제에 경고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특히 2020년을 전후로 심각한 대 파국이 온다는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절묘하게도 2019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쟁점을 삼켜버렸다. 경제 위기는 코로나 때문이며 전염병은 언젠가 끝나게 되어 있으니 경제 위기도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논리가 먹혔다. 

 

독점자본가와 정부 관료들이 경제 위기의 책임을 코로나 사태에 떠넘겼다는 주장은 전부터 있었다. 

 

김성구 한신대 명예교수는 2020년 3월 24일 참세상에 기고한 「공황을 촉발한 코로나19, 공황의 원인은 아니다」에서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공황이 온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코로나는 공황의 촉발 요인일 뿐이지 공황을 가져온 원인은 아니다”라며 “정책당국자들에게는 공황과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전염병 탓으로 돌릴 수 있어서 다행스러울지 모른다”라고 주장했다. 

 

김승호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대표도 2020년 3월 23일 매일노동뉴스 칼럼 「세계경제대공황이 다가온다」에서 “(언론은) 감염병 사태를 이용해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가계급과 자본가계급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앤디 시에 전 모건스탠리 수석 경제분석가는 2020년 3월 1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칼럼을 통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원인이라기보다 방아쇠일 수 있다. 중앙은행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며 세계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도 2021년 1월 1일 「모든 위기가 코로나 탓? 기업·자영업자는 전부터 힘들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코로나 사태 직전 통계자료를 통해 이미 경제는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입증했다. 

 

한편 코로나 사태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속에서도 독점자본가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여 양극화를 심화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테크노킹과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이사회 의장은 2020년 한 해 동안 재산을 각각 1,320억 달러, 700억 달러를 늘렸다. 둘이 합쳐 한화로 217조 원이나 늘린 셈이다. 세계 부자 순위 1, 2위를 다투는 이들의 재산 증가량은 세계 140개국 전체 총생산(GDP)보다도 많다. 미국 인구의 0.0002%도 안 되는 부자 651명의 재산 증가량도 1조 달러에 육박한다.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면서 경제 위기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졌고 미국은 모든 것을 ‘러시아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경제가 어려운 건 러시아 때문이다’라며 독점자본가나 정부로 화살을 겨누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난방비가 폭등했지만 한 편으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면서 한 편으로는 ‘러시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러시아를 향해 분노를 터뜨린다.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미국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활용해 유럽 경제를 끌어내리고,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유럽이 미국에 의존하도록 길들였다. 특히 유럽연합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독일은 그간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의 자원에 의존해 경제를 발전시켜왔다가 이번에 큰 피해를 보았다. 

 

미국 경제는 독점을 토대로 하고 있다. 미국에는 협력과 공동의 이익 같은 개념이 없다. 오로지 상대를 무너뜨리고 약탈해야 살아남고 발전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러시아나 중국 같은 적대적인 국가는 물론 유럽, 일본 같은 동맹도 미국의 시각에서는 협력할 대상이 아니라 약탈의 대상이다. 당장 러시아나 중국을 약탈할 수 없을 때는 동맹을 약탈하는 게 미국에 있어 가장 수월한 방법이다. 

 

원래 미국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 대러 제재를 가했다. 그런데 전 세계가 여기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다. 특히 유럽은 에너지를 비롯해 여러 측면에서 러시아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대러 제재에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나라들이 대러 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전쟁은 적아를 선명하게 구분한다. 만약 미국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 러시아 편으로 오인당할 수 있으며 자칫 미국을 적으로 삼게 될 수도 있다. 마치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고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많은 나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한 것과 같다. 

 

이렇게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을 길들였고 또 자국산 가스를 4배나 비싼 가격으로 유럽에 팔면서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러니 미국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길 바랄 것이다. 미국이 전쟁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크라이나를 전폭 지원하지도 않으면서 겨우 전쟁을 유지할 정도로만 무기를 공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정 없이 지속될 수는 없다. 미국은 러시아를 대신해 경제 위기의 책임을 떠넘길 새로운 대상이 필요하다. 미국의 다음 ‘욕받이’는 중국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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