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파괴해 온 세계의 민주주의] ④ 중남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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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2-31 18:46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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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괴해 온 세계의 민주주의] ④ 중남미-2
박 명 훈 기자 자주시보 12월 31일 서울
☞ 중남미-1에 이어서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미국은 1898년부터 1994년까지 96년 동안 중남미 각국에서 정부 전복을 시도했다. 이 가운데 미국은 41차례 정부 전복을 ‘성공’시켰으며 이 가운데 직접 개입은 17건, 간접 개입은 24건으로 나타났다. ([MT리포트]100년간 41번 개입...美는 왜 중남미 흔드나, 머니투데이, 2019.10.28.)
1994년까지 알려진 게 이 정도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으니 미국이 중남미에서 벌인 민주주의 파괴 공작은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200년이 넘도록 중남미에 깊숙이 개입했고 그 후과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⑨ 엘살바도르 (1980년~1992년)
1981년 1월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엘살바도르를 중남미 문제의 ‘시험장’으로 여겼다. 레이건 정부는 엘살바도르에서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최소한으로 하되, 친미 우파 군부를 지원하며 ‘반미 게릴라’를 소탕하는 이른바 초토화 작전 방식을 지향했다.
미국의 뜻에 따르는 엘살바도르의 친미 우파 군부는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주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미국은 친미 우파 군부라는 ‘방패’를 앞세워 자신의 개입을 감추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엘살바도르에서 저지른 원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든, 친미 우파 군부를 지원하는 방식이든 미국이 엘살바도르 민중을 학살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유엔 진실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내전 중 폭력 행위의 85%는 친미 성향 부대가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조장한 엘살바도르의 내전 상황은 1992년까지 이어졌다.
⑩ 그레나다 (1983년)
미국은 1983년 10월 25일 해병대 1만 5천명을 동원해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는 기존의 혁명 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부를 세우려는 게 미국의 목적이었다.
미국은 민주주의 수호, 자국민 구출 등의 구실을 대며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는데, 애초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면서 다른 나라의 정부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모순되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그레나다 침공 당시 벌인 군사작전에 긴급 분노 작전(Operation Urgent Fury)이라는 작전명을 붙였다. 그레나다 침공은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벌인 첫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미국으로서는 그레나다 침공을 통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한 것이다.
미군은 1983년 12월 15일 그레나다 전역을 장악했다. 이후 그레나다에는 미국이 지지하는 친미 정부가 들어섰다.
한편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은 당시 그레나다 인근 니카라과의 반미 성향 산디니스타 정부를 향한 ‘경고’의 성격도 있었다. 미국으로선 자신의 뜻을 거스르면 그레나다처럼 정부가 무너질 수 있다고 니카라과에 겁박한 것이다.
⑪ 니카라과 (1984년)
미국은 1912년~1933년까지 니카라과를 식민 지배했다. 이후 니카라과가 독립한 뒤에도 미국의 개입과 간섭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34년 미국의 이권을 대변하는 니카라과 헌병대의 수장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 소모사는 1937년부터 대통령 자리에 올라 1979년까지 집권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 초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니카라과 민중의 지지에 힘입어 소모사 정부를 무너뜨렸다. 니카라과 민중의 시각에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집권은 전 민중적 투쟁으로 쟁취한 결실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른바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며 산디니스타 정부를 무너뜨리려 했다. 콘트라 반군은 과거 소모사 정부 시절 니카라과 국가경비대 출신인 친미 장교들이 주축이 됐다.
미국은 콘트라 반군을 돕는 것을 넘어 아예 1984년 3월 들어 니카라과를 직접 침공했다. 미군은 니카라과의 항만, 석유 시설, 해군 기지를 공격했고 영공까지 침범했다. 그럼에도 산디니스타 정부는 미군의 침공을 막아냈고 무너지지 않았다.
이후 산디니스타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미국의 콘트라 반군 지원 및 직접적 무력 사용이 국제법상 위법하다고 제소했다.
1986년 국제사법재판소는 미국이 니카라과의 항만과 석유 시설을 파괴한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며 니카라과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국제사법재판소는 “미국은 다른 나라에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다른 나라의 국내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그리고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법상의 의무를 위반했다”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에는 미국이 니카라과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미국은 지금껏 산디니스타 정부를 전복하려 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 강제성은 없다. 그러나 공신력 있는 국제사법기관에서 미국이 패배한 기념비적 판결로 기억된다.
⑫ 베네수엘라 (1999년~현재)
베네수엘라에서는 1999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당선돼 집권했다. 이전까지 베네수엘라는 친미 우파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베스 정부는 중남미 민중의 외세 개입을 거부하는 자주 노선을 앞세웠다. 차베스 정부는 석유 산업 국유화 등을 밀어붙였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재정으로 복지·교육 정책을 강화했다.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차베스 정부에 환호했지만,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온갖 정치·군사·경제적인 압박과 제재를 가했다.
그러던 중 미국의 지원 아래 2002년 4월 11일 친미 우파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친미 우파 군부세력은 차베스 대통령을 구속했지만 20만 명이 넘는 베네수엘라 민중의 대규모 차베스 지지 시위, 하급 장교들의 잇따른 차베스 지지 선언으로 판이 뒤집혔다. 사흘 만에 미국의 쿠데타 시도가 무산되고 차베스 대통령이 복귀한 것이다. 미국은 차베스 대통령이 복귀한 뒤에도 베네수엘라 내 친미 우파세력과 결탁해 차베스 정부를 굴복시키려 끊임없이 시도했다.
이후 차베스 대통령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2013년부터 지금까지 집권 중이다.
미국은 차베스 정부 때 그랬던 것처럼 마두로 정부를 무너뜨리려 온갖 공작을 펼쳤다.
AP통신에 따르면 2019년 4월 30일에는 베네수엘라 친미 성향 군부세력 일부가 미국과 공모해 쿠데타를 시도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의 라과이라 인근 해변으로 무장 병력 60여 명을 침투시켰지만 베네수엘라 해군에 적발되며 실패했다. 마두로 정부는 쿠데타 시도를 진압하고 바로 다음날 쿠데타와 관련한 200여 명을 체포하거나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쿠데타 시도에는 2018년에 설립된 미국계 용병회사 실버코프가 깊숙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실버코프는 마약 거래를 했다가 탈영된 전직 베네수엘라 군 출신 인사, 마두로 정부가 해임한 베네수엘라 전직 관리 등도 쿠데타에 끌어들였다. 쿠데타 작전을 주도한 실버코프의 조던 구드로는 미국이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과 계약을 맺고 작전을 펼쳤다고 주장했다. 마두로 정부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말을 잘 듣는 정부를 세우는 게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뒤에도 미국은 마두로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2024년 7월 마두로 대통령이 승리한 베네수엘라의 대선 결과를 부정했다. 그러면서 친미 야권의 대선 후보였던 에드문도 곤살레스를 새로운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베네수엘라를 향한 미국의 노골적인 민주주의 파괴 공작은 현재진행형이다.
⑬ 온두라스 (2009년)
2009년 6월 온두라스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마누엘 셀라야 정부가 무너졌다. 쿠데타 이후 치러진 대선에선 친미 우파 성향인 국민당의 포르피리오 로보 소사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미국 국무부는 중남미 담당 아르투로 발렌수엘라 차관보를 로보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시켰다.
당시 쿠데타와 로보 대통령의 집권에 어떤 식으로든 미국이 개입했을 것이란 주장이 나왔는데, 미국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도미니카 공화국에 망명 중인 셀라야 전 대통령이 2010년 6월 28일 국민 앞으로 보내는 편지를 발표했다.
셀라야 전 대통령은 미국의 매파세력이 온두라스 자본가들과 결탁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폭로했다. 셀라야 정부는 집권 당시 미국 석유 회사에 불이익을 주는 법안과 온두라스 내 팔메롤라 미군 기지를 민간 공항으로 전환하는 등 반미 정책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쿠데타로 셀라야 정부를 축출했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이러한 폭로를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중남미에 반미 정부가 들어서면 어김없이 개입해 온 미국의 행태를 볼 때, 폭로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⑭ 볼리비아 (2019년)
2019년 11월 10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사임했다. 말이 좋아 사임이지 사실상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것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사임하면서 “내 죄는 원주민이자 좌파이고 반제국주의자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집권기 동안 미국이 독점하다시피 하던 리튬 등 주요 자원을 국유화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볼리비아의 자원을 헐값에 들여오던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큰 손해를 보게 됐다. 미국의 시각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은 미국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눈엣가시였다.
멕시코의 국제 문제 분석가인 알프레도 할리페 라메는 「볼리비아에 대한 미국의 지배」라는 글에서 미국의 모랄레스 축출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반정부 군·경찰 조직 ▲반정부 단체에 자금 지원 ▲폭력 사태 조장 ▲모랄레스 대통령을 공격하는 가짜뉴스의 생산과 전파 ▲미국이 입김이 강한 미주기구(OAS)를 통해 볼리비아의 대선 결과를 부정하고 대규모 친미 우파 시위를 조직하는 등의 수법을 썼다.
⑮ 페루 (2022년~현재)
페루에서는 2021년 7월 페드로 카스티요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카스티요 대통령은 구리 광산을 운영하는 미국 기업에 광산 허가 비용을 내게 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자 페루 의회를 장악한 친미 우파세력은 2022년 5월 6일 ‘전투용 무기를 지닌 해군 부대 및 외국 군인의 진입을 허용’하는 결의안을 승인했다. 이는 친미 우파세력의 시각에서 미국의 군사 개입을 통해 미국의 이권을 지키기 위한 노림수였다.
이후 친미 우파세력은 카스티요 대통령을 중대 범죄자로 매도하며 수사를 요구하는 등 정부 전복 시도를 노골화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2022년 12월 7일 카스티요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의회 해산 ▲비상사태 정부 구성 ▲신헌법 제정 기구 설립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페루에 미군까지 들이려는 친미 우파세력으로부터 페루의 민주주의와 주권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같은 날 친미 우파세력이 장악한 의회가 카스티요 대통령을 탄핵했다. 이 때문에 카스티요 대통령의 조치가 무산됐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리사 케나 페루 주재 미국 대사는 카스티요 대통령이 탄핵당하던 날 의회 쿠데타세력을 즉각 지지했다. 쿠데타 이후 미군 남부사령부는 페루 의회가 통과시킨 결의안에 따라 페루에 미군 1,000명을 주둔시켰다.
카스티요 대통령이 탄핵된 뒤에는 디나 볼루아르테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디나 볼루아르테 부통령이 정부를 계승하는 걸 강력하게 지지한다”라며 “미국 정부는 디나 볼루아르테 임시 대통령에게 좌우를 막론한 거국중립 내각의 구성”을 요구했다.
본래 카스티요 대통령과 같은 정당 소속이었던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미국과 친미 우파세력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금도 집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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