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준191] 조직에서 뒤통수를 맞는 한국의 스파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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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7-05 17:31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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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191] 조직에서 뒤통수를 맞는 한국의 스파이들
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7월 5일 서울
김병기
김병기 민주당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했다가 아들 취업 문제로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핵심은 부정이 있었냐 없었냐가 아니라 의혹의 증거라고 나온 녹음 파일이 어디서 흘러나왔느냐는 것입니다. 파일은 국가정보원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한마디로 김병기는 평생을 몸담았던 국정원에 뒤통수를 맞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국정원에 뒤통수를 맞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김병기는 1987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에 입사해 20여 년간 인사처에서 근무했습니다. 국정원 인사와 관련해서는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를 “독보적인 국정원 인사 전문가”라고 평가했습니다.
![]() ▲ 김병기 의원. © 김병기 블로그 |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자 김병기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되어 안기부 개혁을 맡았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국정원 개혁 태스크포스에 인사 담당 실무자로 참여했습니다. 이후 2007년 국정원 인사팀장으로 재임하였고 인사처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탄압이 시작됐습니다. 안기부·국정원 개혁에 앙심을 품은 자들이 복수를 했던 듯합니다.
2009년 2월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원세훈은 김병기를 파면했습니다. 인사처장 재임 시절 인사 자료를 위조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기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김병기에게 국정원 4급 승진을 영호남 비율을 40%와 20%로 맞춰서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승진 대상자를 취합해 보니 영남과 호남 비율이 61%와 9%로 도저히 지정한 비율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국정원은 내부적으로 영호남 출신 비율을 2:1로 정했는데 이게 4급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7:1 정도로 벌어진 것입니다. 영남 출신을 훨씬 많이 승진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 당시 승진 대상자 중 한 명이 호적상 출생지가 경북이지만 실제 출생지는 전남이었습니다. 그러자 김만복은 그의 출생지를 전남으로 바꾸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대상자는 앞선 인사에서도 영남 출신이란 이유로 승진을 못 했던 인물입니다. 이게 나중에 인사 자료 위조로 문제가 됐습니다.
이 문제로 파면당한 김병기는 징계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냈고 2014년 재판부는 국정원장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어서 자료를 위조했으므로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2009년 국정원은 김대중 정부 시기 안기부 개혁과 관련해 서류 위조 혐의로 김병기를 고발했습니다. 그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과 3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처럼 김병기는 평생을 국정원에 바쳤지만 민주당 정부 시기 국정원 개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국힘당 정권 시기에 탄압을 받아왔습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아들 취업 문제도 국정원의 보복 의혹이 있습니다.
김병기의 아들은 기무사 장교 출신으로 2014년부터 국정원에 지원했으나 3차례나 떨어졌다가 2016년 10월 겨우 합격했습니다. 3차에 걸친 불합격 과정을 보면 최종 면접까지 합격한 뒤 신원조회에서 떨어졌는데 기무사 장교가 신원조회에 걸린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김병기는 자신의 징계와 관련된 자들이 보복 차원에서 아들을 불합격 처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는 전에도 이미 논란이 있었고 국정원이 2018년, 2025년 두 차례나 김병기 아들의 국정원 합격 과정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공식 해명한 사실도 있습니다.
이 문제가 이번에 다시 논란이 된 건 MBC가 김병기 부인과 국정원 전 기획조정실장의 통화 녹음 그리고 김병기가 국정원에 제출한 입장문을 공개하면서 불거졌습니다. 이 두 가지를 입수할 수 있는 경로는 국정원밖에 없습니다. 즉, 국정원이 MBC에 정보를 제공해 김병기를 공격한 것입니다.
김병기는 김대중 정부 시절 블랙요원(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정보요원)을 대거 양성하라는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의 명령에 따라 많은 블랙요원을 육성하고 파견했습니다. 이렇게 보낸 블랙요원 가운데 많은 수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김병기는 국가를 위해 일했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병기는 그렇게 자신의 청춘을 바쳐 일해 왔던 국정원에 여러 차례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홍장원
12.3내란 과정에서 윤석열의 명령을 거부해 유명해진 홍장원 국정원 전 1차장도 조직에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2월 4일 윤석열 탄핵 심판 과정에서 여명 대통령비서실 전 행정관이 홍장원을 향해 대북 공작금 횡령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윤석열 측 김계리 변호사도 이 의혹을 언급했습니다. 사실 이 의혹은 지난해 이미 언론에 공개됐던 내용입니다.
그 의혹이란 게 이명박 정부 때 홍장원이 중국에 파견을 가 700만 달러로 대북 공작용 부동산 2개를 친구 명의로 구매했는데 국내 복귀 후 친구가 부동산을 가져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즉, 홍장원이 친구와 공모해 공작금 700만 달러를 횡령했다는 주장입니다.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더 흥미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이명박 정부 말기 대북 공작 전문 블랙요원이던 홍장원이 중국 홍콩으로 파견됩니다. 홍장원은 홍콩에 700만 달러에 이르는 고급 대저택을 구매해 공작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공작금으로 구매했고 자기 신분을 숨기기 위해 재미교포인 자기 친구를 집주인으로 등록했습니다.
그렇게 3~4년 동안 공작 기반을 닦은 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이병기 신임 국정원장이 소환합니다. 의전 비서가 필요하니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원래 블랙요원은 공작 기반을 닦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소환하는 건 국정원 내에서 굉장히 황당한 일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상부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귀국하면서 홍장원은 대저택을 처분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집주인으로 되어 있던 친구가 자기 소유라면서 먹고 튀어버립니다. 홍장원은 블랙요원이고 장소도 외국인 데다 서둘러 귀국해야 하니 전혀 대응을 못 하고 눈앞에서 수십억 원의 공작금을 날려버렸습니다.
즉, 횡령이 아니라 사기를 당한 셈입니다. 물론 홍장원의 잘못도 있지만 비밀공작의 특성상 불가피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책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홍장원이 횡령하지 않았다는 건 조태용 전 국정원장도 인정했고 문재인 정부 때 검찰 수사와 국정원 내부 감찰도 있었지만 비리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국정원 인사에 불만을 품은 이가 이 사건을 횡령 사건으로 만들어 조태용에게 투서를 넣고 감찰 압박을 넣었습니다. 이에 조태용이 감찰 지시를 했고 이 사건이 언론에 드러났습니다.
홍장원으로서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블랙요원으로 활동했는데 국정원에 뒤통수를 맞은 셈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홍장원은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윤석열의 지시를 거부했다가 1차장에서 쫓겨났습니다. 윤석열이 발끈해서 홍장원을 경질하라고 했는데 국정원장인 조태용이 자기 부하를 지켜주지 않고 대통령 뜻이 그러하니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날인 2024년 12월 6일 홍장원은 사실상 해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극우 시민단체가 나서서 홍장원이 거짓말을 했다며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이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곧바로 홍장원을 입건해 일요일인 다음 날 소환을 통보했습니다.
윤석열과 국정원, 검찰, 극우 단체가 홍장원 한 명을 제거하려고 사력을 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흑금성
대한민국 블랙요원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로 박채서, 공작 명 흑금성일 것입니다. 그의 공작을 소재로 한 영화 「공작」(2018년 개봉)이 청룡영화상 감독상,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작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 ▲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 역을 열연한 배우 황정민. © CJ 엔터테인먼트 |
정보사 출신인 흑금성은 실력을 인정받아 안기부에 특채된 후 대북 사업가로 위장, 극비리에 대북 첩보 활동을 했습니다. 그의 목숨을 건 첩보 활동으로 안기부는 큰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97년 이회창 한나라당(지금의 국힘당) 대선 후보 관련자들이 북한에 국지 도발을 요청하는 이른바 총풍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 사건에 안기부도 연루가 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고 검찰 수사가 목을 조여오자 안기부는 김대중 측도 북한과 접촉했다며 언론 공작을 시도합니다. 북한에 포섭된 이중 첩자 흑금성이 김대중 측에 침투했다고 한 것입니다.
당시 흑금성은 안기부 수뇌부의 북풍 공작을 감지하고 이를 막는 맞공작을 펼쳤는데 이 때문에 미운털이 박힌 듯합니다.
이렇게 정체가 드러난 흑금성은 공작 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고 안기부는 1998년 쓸모가 없어진 흑금성을 해고합니다.
유능한 블랙요원이 조직의 모략에 빠져 쫓겨난 것입니다.
흑금성이 안기부에서 쫓겨난 뒤에도 정부는 대북 사업이 막힐 때마다 그를 ‘비선’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6월 1일 새벽 자신이 몸담았던 국정원 수사관들이 집으로 몰려와 그를 끌고 갔습니다. 그는 북한의 지시를 받고 군사 기밀을 입수해 넘긴 혐의로 6년 형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했습니다. 흑금성 본인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국정원과 검찰은 이미 모든 판을 짜둔 후였습니다.
출소 후 흑금성은 기자에게 “이것조차 내 신념에 따라 내가 선택한 길의 결과이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공작원은 국가나 조직에 배신감을 느끼거나 공작 수행을 후회한다는 말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다. 다만 국정원이 비겁한 거다. 타국도 아니고 우리나라가, 정보기관의 공작원을 규정이 아닌 다른 수단을 동원해 법정에 세웠다. 이것만큼 치욕이 어디 있나”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김형욱
1963년 중앙정보부장으로 취임한 김형욱은 박정희 군사독재를 지탱하기 위해 납치, 고문, 야당 파괴, 부정선거, 대기업 갈취 등 온갖 더러운 일을 자행했습니다. 통혁당 사건,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등 굵직한 조작 사건도 김형욱이 작업했습니다.
![]() ▲ 통혁당 사건을 발표하는 김형욱. [출처: 경향신문사] |
그러다 김형욱의 권력 남용과 국회 간섭이 도를 넘자 여당에서 김형욱 해임을 요구할 지경이 됐고 박정희는 1969년 3선 개헌을 날치기로 통과한 직후 김형욱을 전격 경질해 버렸습니다. 기습적으로 해임당하는 바람에 김형욱은 비밀 서류 한 장도 못 가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박정희에게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것입니다.
이후 김형욱은 순식간에 권력을 잃고 몰락했으며 결국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미국에 망명한 김형욱은 박정희의 온갖 비리를 폭로했습니다. 이에 박정희는 김형욱을 제거하기 위해 중앙정보부 요원들을 파견했고 1979년 10월 7일 이후로 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최후에 관해서는 온갖 끔찍한 소문이 돌지만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왜 이들은 뒤통수를 맞았나
2015년 7월 18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야산 중턱. 빨간 마티즈(경차) 차 안에서 한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국정원의 팀장급 간부였던 임 모 과장이었습니다. 18대 대선 관련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과 선거 개입 의혹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는데 갑자기 숨진 채 발견된 것입니다. 차에는 ‘이번 사건은 민간인 사찰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있었고 번개탄을 피운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자살로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이들은 임 과장이 ‘자살을 당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국정원이 위기에 몰리자 꼬리 자르기 식으로 직원을 죽이고 자살로 처리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일단 무시무시한 국정원 직원과 빨간색 구형 경차부터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핵심 증거물인 마티즈는 사건 발생 나흘 만에 폐차되어 더욱 의구심을 낳았습니다.
2년 후 임 과장의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에 상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놀랐다”라며 “이런 자살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부검을 요구했지만 무시당했으며 경찰이 말썽 일으키지 말라고 협박을 해 2년이나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 사건 이후 사람들은 국정원 내 부정·비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또 어떤 직원이 마티즈에서 번개탄 피우고 자살 당하는 거 아니냐’며 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정보 요원으로 활동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조직에 뒤통수를 맞는 건 너무 억울한 일입니다. 국정원이 대체 왜 이럴까요?
정보기관이 추악한 비리를 덮기 위해, 혹은 정보기관 고위 인사가 자기 비리를 감추려고 현장 요원을 제거하는 건 첩보 영화의 흔한 소재입니다.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할 정보기관의 비리라는 건 결국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 행위입니다. 즉, 국정원이 매국 집단이라서 자기 요원의 뒤통수를 치는 것입니다.
국정원에 들어갈 때는 누구나 국가에 헌신 복무하겠다는 애국의 마음을 품었겠지만 국정원 자체가 매국 집단이다 보니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특히 윤석열 정권 시기 국정원은 윤석열, 김건희의 수족 역할을 했습니다.
매국 집단 안에서는 오직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온갖 음모와 술수가 난무합니다. 가장 기본은 파벌입니다. 끼리끼리 편을 갈라 자기편은 당겨주고 끌어주고, 상대편은 끌어내리고 내치는 파벌 싸움은 아주 흔하게 일어납니다. 애국심을 안고 국정원에 들어간 사람들은 이런 파벌들에 눈치껏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이용만 당하다 뒤통수를 맞고 제거됩니다.
이게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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