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일 소장의 민족주의적 통일담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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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4-09 03:3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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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담론의 2중 패러다임
<특별기고> 정수일 소장의 ‘민족주의적 통일담론’ (3)
정수일 /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 통일뉴스
<특별기고> 정수일 소장의 ‘민족주의적 통일담론’ (3)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정수일 소장의 ‘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을 게재한다. 주지하다시피 정 소장은 세계적인 문명교류학자다. 그러기에 독자들은 ‘문명교류학자가 왜 민족주의와 통일담론을?’ 하고 의아해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의 학문의 저변에는 시종일관 민족 문제가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는 일찍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명교류학 연구를 하게 된 동력이 ‘민족주의’임을 밝히면서, “일생을 통틀어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문명교류학과 민족주의”라며 “분단은 가장 큰 비극이며 이제 남북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통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궁극적으로 민족주의에 근거해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필생의 업인 문명교류학의 고지(高地)를 넘은 그가 만년에 이르러 또 하나의 필생의 업인 통일 문제에 천착해 이제 내놓는 ‘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은, 다가올 한반도 통일시대에 대비해 솟구칠 통일방안 수립에 있어 어떤 시사점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이 특별기고는 아래와 같이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민족주의적 통일담론> Ⅰ. 통일담론과 민족주의 (여는글 포함) / 3월 30일 (월) |
Ⅲ. 통일담론의 2중 패러다임
남북으로 갈라진 나라와 민족을 다시 하나로 복원하기 위해 전개되는 한반도의 통일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남북관계를 상충(相衝)과 공존이 교차하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불 것인가, 아니면 연대와 상조(相助)를 본분으로 하는 민족 내부의 관계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난 70여 년 동안의 분단사가 보여주듯이, 이러한 관계의 변화에 따라 통일담론의 패러다임(paradigm)이나 내용이 확연하게 다르게 된다.
일찍이 몇몇 연구자들은 이 점에 착안해 각이한 시각에서 통일담론의 패러다임을 논급해 왔다. 그 내용을 대별하면, 대체적으로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보는 국가 중심의 사회학적 패러다임과 그와 상치되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보는 민족 중심의 인문학적 패러다임의 두 가지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의 통일담론이 부득이하게 갖게 되는 2중 패러다임이다.
논의에 앞서 한 가지 부언할 것은, 논자들 간의 학문적 소통이 결여된 탓인지, 통일담론의 패러다임에 대한 학문적 표현이 각인각색이어서 심히 혼란스럽다. ‘국가우선주의적 패러다임’과 ‘민족우선주의적 패러다임’, ‘국가중심적 통일담론’과 ‘민족중심적 통일담론’, ‘국가 중심의 통일론’과 ‘민족 중심의 통일론’, ‘국가 중심의 시각’과 ‘민족 중심의 시각’, ‘국가 우선주의적 시각’과 ‘민족 우선주의적 시각’, ‘국가 지향 가치’와 ‘민족 지향 가치’, ‘국가성’과 ‘민족성’ 등 애매모호한 유사 표현들이 제멋대로 쓰이고 있다. 이에 대비해 필자는 졸문에서 여러 가지 표현을 ‘국가중심패러다임’(state-centric paradigm)과 ‘민족중심패러다임’(nation-centric paradigm) 한 가지로 통일해 사용하고자 한다.
1. 2중 패러다임 산생의 역사적 배경
국가와 민족, 어느 하나를 중심에 놓고 사유하면서 2중 패러다임을 논하는 것은 체제가 서로 다른 두 국가이면서도 같은 민족이라는 남북관계가 이중성을 띨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서 비롯된 특수한 현상이다. 한반도의 분단역사를 되돌아보면, 당초부터 통일의 당위성과 현실성 사이에 커다란 괴리현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공히 통일담론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남북 간에 체제경쟁이 본격화되던 1972년에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3대원칙에 합의한 ‘7.4남북공동성명’은 적어도 겉으로는 서로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통일 논의(방안)이었다. 그러나 국가 지향적 가치가 민족 지향적 가치를 압도하던 당시의 역사적 제약 속에서 아쉽게도 이 화해 시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상대방의 적대성을 더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사실상, 남한에서는 분단 이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반공이데올로기에 바탕한 국가 중심의 통일 정책과 민족 중심의 재야 통일운동은 서로가 격심하게 대립하고 충돌해 왔다. 일찍이 진보당 당수인 조봉암이 국가우선주의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무력통일을 반대하고 민주주의적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다가 역사의 이슬로 사라진 비극이 바로 그 대표적 일례다. 재야의 통일담론은 용공 논리에 밀려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이 결합되면서 그 동안 금지되어 왔던 통일담론과 북한에 대한 이해의 욕구가 민간 차원에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민주화가 심화되고 세계적으로 탈냉전의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정부 당국도 이에 상응하는 통일담론과 통일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를테면, 통일담론에서 전래의 일방적 국가중심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민족중심패러다임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절박한 시대적 요청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드디어 6공 노태우 정부는 눈총을 맞으면서도 과감한 통일정책 전환의 시류에 편승하게 되었다. 이것이 통일담론이 2중 패러다임을 띠지 않을 수 없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1988년 6공화국 정부는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을 발표해 북한을 대결의 상대로 보지 않고 화해와 협력의 동반자로 규정하였으며, 이어 다음해에 제기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는 통일과정을 화해협력단계, 남북연합단계, 통일국가단계의 3단계 과정으로 설정함으로써 남북 화해협력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다행스럽게도 이 통일방안은 남북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한민족 공동체를 회복한다는 재야 통일운동이 주장하는 민족우선주의 가치가 정부의 통일정책에 처음으로 반영된 경우다. 이후 한국 정부가 발의한 일련의 통일방안들은 이 ‘통일방안’을 기본적인 모본(模本)으로 삼았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이러한 남한의 전향적인 통일담론과 통일정책이 남북 관계의 전개에 반영된 것이 바로 1991년 12월에 남북 총리가 서명한「남북기본합의서」다. ‘합의서’ 서문에는 남북한 “쌍방 사이의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2005년 12월 남한이 제정한「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제3조도 이「남북기본합의서」내용을 그대로 옮겨놓고는 곧 이어 “남한과 북한 간의 거래는 국가 간의 거래가 아닌 민족 내부의 거래로 본다”고 천명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남북관계는 우리가 흔히 보는 국제관계에서의 국가 대 국가 간의 일반적 관계가 아니라, 두 국가로 나눠진 한 민족이 재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 부득이하게 형성된 잠정적인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라는 사실이다.
이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던 적대시기나 냉전시기와는 달리, 같은 민족이지만 체제가 서로 다른 국가라는 현실을 기존사실로 인정한 점에서 이후 남북관계 발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획기적인 합의서였다. 이로써 ‘한 민족 두 국가’라는 남북관계의 이중성이 국가적 차원에서 공인된 셈이다. 이것이 또한 통일담론이 2중 패러다임을 띠게 된 역사적 배경이자 연원인 것이다.
2. 2중 패러다임의 개념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반도 통일담론의 패러다임(체제나 틀)이 2중성(국가중심패러다임과 민족중심패러다임)을 띠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한반도 분단이 ‘1민족 2국가’라는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러한 2중성은 역사적 및 현실적 당위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당위성에 관한 불편부당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통일담론의 패러다임을 제대로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분단의 현실 속에서 ‘국가 지향의 가치’와 ‘민족 지향의 가치’ 간에 벌어진 끊임없는 인위적인 경쟁과 대립, 갈등 관계에만 익숙해 온 일부 논자들은 통일담론의 2중 패러다임도 의례 이러한 관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교조주의적 경직된 착각에 매몰되어 왔다. 그리하여 ‘국가 우선주의적 시각은 분단 국가의 한쪽 체제를 민족 전체로 확대 적용하고자 하는 반면, 민족 우선주의적 시각은 분단된 두 국가 체제를 넘어 화해와 협력을 통한 민족공동체의 회복을 중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이 두 패러다임의 관계는 시종 서로가 ‘대립’하는 ‘양극화 현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 지향의 가치’와 ‘민족 지향의 가치’, ‘국가 우선주의적 시각’과 ‘민족 우선주의적 시각’이 통일담론에서는 각각 ‘국가중심패러다임’과 ‘민족중심패러다임’으로 표출된다,
통일담론의 2중 패러다임을 이렇게 경쟁과 대립, 갈등과 양극화로 치부하는 이러한 주장은 통일담론의 2중 패러다임의 기본개념에 관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오해나 무지의 소치로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첫째로, 국가중심패러다임의 지향점을 오로지 국가 대 국가의 일방적 흡수로 오해하고 있다. 남한에서의 이러한 ‘흡수통일’ 주장은 분단(국가 분립) 이후 냉전시대가 종식될 때까지 약 40년 동안 흡수통일론자들에 의해 구상되고 고집되어 왔다. 그렇지만 그러한 구상은 태생적으로 일종의 망상이었기 때문에 애당초 실현될 수가 없었음은 물론,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30여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탈냉전시대에 와서 그러한 과대망상은 거의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으로, 민족중심패러다임의 목표를 민족공동체의 복원에만 맞추고 있는 것은 얼핏 보면 그럴싸한 발상이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유해무익한 미시적 단견(短見)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민족중심패러다임이 지향하는 거시적 목적은 회해와 협력을 통해 실종되었거나 균열이 생긴 민족공동체를 원상 복원하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에 걸맞게 민족공동체를 더욱더 공고히 하고 발전시킴으로써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종국적으로는 민족의 자주통일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공동체 의식은 통일 이후에도 장기간 민족통일국가의 융성발전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요인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셋째로, 통일담론의 2중 패러다임을 서로가 무관한 별개의 고립적 패러다임으로 보는 착시(錯視)다. 원래 통일담론의 전개과정에서 국가중심패러다임과 민족중심패러다임은 분립(分立)된 필마단기(匹馬單騎)가 아니라, 한 채의 수레가 잘 굴러가도록 좌우에 가쯘히 달린 두 개의 바퀴와 같다. 결코 하나는 ‘흡수’하는 악종(惡種)이고, 다른 하나는 ‘상조’하는 선종(善種)이라는 선악 개념이 아니다. 사실은 국가중심패러다임마저도 원래부터가 악종의 인자(因子)를 자연배태(自然胚胎)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모한 작위(作爲)에 의해 일시 범한 일탈에 불과한 것이다. 운영의 묘에 따라 다 같이 선종이 될 수도 있고, 악종이 될 수도 있다. 국가중심패러다임에 의해 국가가 통일담론을 민족통일에 유리하도록 긍정적으로 선도하고 건설적으로 지원한다면, 민족중심패러다임은 보다 유력하고 유효한 패러다임으로 활성화되어 부과된 기능과 소임을 다하게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두 패러다임 간의 바람직한 변증법적 관계인 것이다.
끝으로, 패러다임에 대한 종합적 운영의 부재다. 통일담론은 그 자체가 시공을 넘어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것을 기제하는 패러다임도 역시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내용을 아울러야 한다. 특히 분단 한반도와 같이 ‘2국가 체제’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공식회담이나 상호교류를 위해 국가가 책임지고 나서서 해야 할 사업이 다종다양하며, 민족공동체의 복원에 의한 통일의 달성을 위해 범민족적으로 수행해야 할 일이 또한 비일비재다. 예컨대, 작금 남북 쌍방 간에 근접해가고 있는 통일 3단계론(화해협력 → 남북연합 → 통일국가)의 실현과정이나 평화프로세스의 추진은 그 어느 것 하나도 국가의 개입이나 민족의 동참 없이 성사되기란 도시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2중 패러다임 자체와 그 관계에 관한 여러 가지 오해와 착각, 착시로 인해 분단사와 통일담론에서 국가중심패러다임이 절대적 우세를 점하고, 민족중심패러다임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는 기형(畸形)을 보여 왔다.
이상과 같이 한반도의 통일담론을 이끌어가는 2중 패러다임에 관한 나름대로의 평가에 바탕해 그 개념 정립을 다음과 같이 시도해 본다.
1) ‘1민족 2체제’라는 한반도 분단 현실의 특수성을 감안해 통일담론의 패러다임 범주를 담론의 내용과 간여 주체에 따라 국가중심패러다임과 민족중심패러다임으로 2대별한다.
2) 국가가 운영 주체인 국가중심패러다임은 국가(체제) 간의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일방적인 ‘흡수론’을 지양하고, 상호 신뢰와 호혜에 기초한 협력과 상호 불간섭, 민족 공동의 국제적 위상 선양 등 자주적 통일국가 건설에 필요한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내용들을 그 구성요소로 한다.
3) 민족이 운영 주체인 민족중심패러다임은 민족주권의 수호, 민족연대성의 강화, 민족전통의 계승, 민족 동질성의 복원, 다민족시대에 상응하는 민족공동체의 재건 등 민족통일국가 건설의 기반이 되는 내용들을 그 구성요소로 한다.
4) 국가중심패러다임과 민족중심패러다임은 분단으로부터 통일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항시적으로 작동되는 통일담론의 2대 상수(常數) 패러다임으로서 운영에서는 통일환경의 변화에 따라 용도나 의존도의 선후(先後)나 비중에서 선별적 차이는 있어도, 전횡이나 배척, 우열의 차별은 불허되며 상호보완적으로 병용(竝用)된다.
5) 통일담론의 2중 패러다임은 어떠한 경우에도 민족주의의 근본속성인 연대의식과 민족수호 의지 및 발전지향성을 확고한 철학적 기조와 행동준칙으로 삼고, 통일담론을 균형있게 이끌어간다.
3. 2중 패러다임의 효용(效用)
한반도의 통일담론사에서 국가중심패러다임과 민족중심패러다임은 항시 그 위상과 기능이 고정불변하게 양립해 온 것이 아니라, 정세 특히 구심적 통일기운의 기복(起伏)과 원심적 국제관계의 변화에 따라 엇바뀌거나 팽팽히 맞서는 등 일련의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그러나 70년 분단사의 큰 맥락에서 보면, 그 우여곡절은 1980년대 중반에 일어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그리고 국제적인 탈냉전시대의 도래를 계기로 일대 변곡점(變曲點)을 맞아 내용과 형식에서 질적 변화를 나타냈다.
분단사의 전반(前半)에 해당한 40여 년간(이승만 정부 → 전두환 정부) 통일담론을 풍미해 오던 국가중심패러다임은 점차 기가 꺾이면서 민족중심패러다임으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30여 년 동안(노태우 정부 → 문재인 정부) 이어온 통일담론이 민족중심패러다임 일색으로 변모된 것은 아니고, 양자는 여전히 공존하면서 줄곧 확장성과 흡입력을 지향하는 대립과 긴장관계를 음으로 양으로 유지해 왔다. 때로는 국가권력자들의 성향에 따라 국가중심패러다임이 구태의연한 독선을 부릴 때도 있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앞에서도 지적하다시피, 통일담론에서의 민족중심패러다임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중심패러다임도 그 철학적 기조는 일괄해 민족주의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연구상황을 훑어보면, 다수가 국가 대 국가의 사회학적 패러다임에 주안점을 두고, 소수만이 민족 내부의 인문학적 패러다임에 착안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수마저도 민족주의 시각에서 패러다임의 철학적 기조를 논급한 예는 거의나 없다. 그러다 보니 ‘민족중심패러다임’은 냉철한 논리적(철학적) 구조나 안받침이 결여된 ‘감상적’ 구두선(口頭禪)쯤으로 치부되기가 일쑤였다. 바로 이 때문에 필자는 이렇게 개창적으로 ‘통일담론의 패러다임’을「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의 한 논제로 끌어내어 그 개진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지난 분단사의 경험은 통일담론에서 채택되는 패러다임이 ‘국가중심’인가, 아니면 ‘민족중심’인가 하는 것이 통일의 당위성과 그 과정 및 성격을 규제하는 데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만일 이 두 패러다임을 서로 대치되는 개념으로 착각해 ‘국가중심’으로 일변도(一邊倒)할 경우에는 모순과 충돌의 소지가 있지만, 이와는 달리 일변도가 아닌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하면서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활용한다면 상부상조적 보완 속에 2중 패러다임은 통일담론을 진전시키는 체제와 틀로서 십분 효용될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와 같이 ‘1민족 2체제’가 대내외적으로 공식 인정된 이상, 남북 두 나라 간의 통일문제에 국가권력이 간여하여 소정의 기능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예컨대, 작금 남북 간에 근접성을 보이고 있는 통일3단계론에서 첫 단계인 화해협력단계와 셋째 단계인 통일국가단계는 각각 민족중심패러다임적인 민족성과 국가중심패러다임적인 국가성이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며, 둘째 단계인 남북연방단계는 민족성과 국가성의 혼성(混性) 속에 소기의 통일단계를 원만히 마치고 드디어 통일국가가 건설될 것이다. 문제는 편단(偏斷) 없이 민족성과 국가성을 유기적으로 잘 결합하여 통일담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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