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절 특집 3. – 김일성 주석과 조중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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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4-11 17:2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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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1970년 4월 평양을 방문한 중화인민공화국 주은래 총리를 따뜻이 맞이하는 김일성 주석 (조선의 오늘에서)
- 태양절 특집 3. – 김일성 주석님울 회고한다
4월 15일은 조선민족의 영웅 김일성 주석께서 탄생하신 날이다.
김일성 주석님은 1912년 4월 15일 평양 만경대의 가난한 농가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시던 김형직 선생과 어머니 강반석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올해로107회 탄생일을 맞이하여 세계인들에게 보여주신 그분의 생전 자취를 유럽지역 선군연구회를 통하여 회고해 본다.
코레아뉴스 편집실
- 태양절 특집 3. – 김일성 주석과 조중친선
유럽지역 선군연구소
조중친선은 김일성 주석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그분은 조중친선의 력사에 지울수 없는 자욱을 남기시였다.
조선의 해방을 위한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주석께서는 중국의 노세대 지도자들과 혁명가들을 공동의 전선에 함께 선 전우, 한 전호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형제로 여기셨으며 중국혁명을 피로써 도우시였다.
중국혁명이 존망의 위기에 처하였던 1940년대 후반기의 동북해방전쟁시기 그분께서는 중국인민의 혁명투쟁을 지원하는 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조선인민의 숭고한 국제주의적 의무로 된다고 하면서 항일대전의 혈전만리를 헤쳐온 조선인민혁명군의 우수한 지휘관들을 중국 동북지방으로 파견하셨고 물심량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였다.
그분의 뜻을 받들어 중국의 전장으로 떠난 조선인 병력은 25만여명에 달하였다. 동북해방작전들에서 조선인 전투원들은 공격전의 앞장에서 목숨도 서슴없이 바쳐 진격로를 열어나갔다. 2년반에 걸치는 중국동북해방작전을 승리로 결속한 뒤에도 조선인 부대들은 베이징 해방전투와 장강도하작전, 해남도 해방전투를 비롯하여 중국이 전국적 범위에서 승리를 이룩할 때까지 도와주었다.
중국의 광활한 지대에는 그들의 숭고한 국제주의넋이 깃들어 있다.
중국동북지방인민들은 오늘도 《동북땅 그 어디에 가서든 한줌의 흙을 쥐여보라,그러면 거기에는 수많은 조선의 아들딸들이 흘린 피가
스며있다.》고 말하고있다. 중국의 지도자들이였던 모택동과 주은래가 《중국의 오성홍기에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피가 스며있다.》고 말한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다.
김일성 주석과 중국의 로세대지도자들 사이에 맺어진 국경과 외교적 관례를 초월한 열렬하고 진실한 동지적 우의는 조중친선의 굳건한 초석으로
되였다.
주은래총리는 김일성 주석을 조선혁명뿐아니라 세계혁명을 이끄실 지도자로
존경하였으며 주석께서도 그를 가장 친근한 벗으로, 전우로 존대하시였다.
주은래가 김일성 주석을 얼마나 진심으로 흠모하였는 가는 1960년대 초 주석께서 불편한 몸으로 계실 때 그가 분망한 국사속에서도 불원천리 조선을 방문하여 주석의 건강을 위로한 사실과 주석께서 중국동북지방을
비공식 방문하였을
때 암수술을 받고 운신하기 힘든 형편속에서도 할빈에 까지 가서 직접 주석을 영접한 사실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국제회의로 모스크바에서 주석과 한 호텔에 들었을 때 주은래가 한밤중에 주석의 호실을 찾은적이 있었다.
두분의 탁월한 지도자들께서는 새날이 밝을 때까지 두터운 우정속에 장구한 인생행로와 혁명투쟁의 로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어떤 격식도 없이 외교적관례를
초월하여 이어진 두 지도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수 있다. 주은래에게 주석께서는 변함없는 동지적 믿음과 지지를 보내시였으며 그가 불치의 병으로
수술을 받을 때 불원만리 국경넘어 그를 찾아 위로도 해주군하였다.
이러한 김일성 주석을 그는 평생 잊지 못해하였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 그는 자기를 위하여 또다시 수만리 국경을 넘어 찾아오신 주석의 의리에 눈굽을 적시며 김일성 주석은 참으로 위대한 분이시다, 그처럼 탁월한분을 만나 뵈온것은 자기에게 있어서 더없는 행운으로 된다는 말을 남기였다.
모택동주석 역시 임종을 앞둔 시기에 자신을 찾아오신 그이께 감동을 금치 못하며 나는 김일성 동지와 같은 세계적인 위인을 가장 친근한 전우로, 형제로 모시고 있은 것을 무한한 행복으로 생각한다고 하면서 주석께서 부디 만년장수하실것을 당부하였다. 주석께서는 주은래가 서거한 후
조선에서의 첫 외국인 동상으로 그의 동상을 그가 흥남비료공장(당시명칭)에서 연설하던 모습 그대로세워주시였다. 주석의 이러한 고결한 의리에 떠받들려 조중친선은 력사의 풍파속에서도 추호도 드팀없이 이어져왔다.
조중친선에 쌓아올리신 김일성 주석의 공헌은 역사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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