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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 소장의 민족주의적 통일담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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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4-05 19:2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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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담론과 민족주의

 

<특별기고정수일 소장의 민족주의적 통일담론’ (2)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통일뉴스

정수일 /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정수일 소장의 ‘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을 게재한다. 주지하다시피 정 소장은 세계적인 문명교류학자다. 그러기에 독자들은 ‘문명교류학자가 왜 민족주의와 통일담론을?’ 하고 의아해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의 학문의 저변에는 시종일관 민족 문제가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는 일찍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명교류학 연구를 하게 된 동력이 ‘민족주의’임을 밝히면서, “일생을 통틀어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문명교류학과 민족주의”라며 “분단은 가장 큰 비극이며 이제 남북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통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궁극적으로 민족주의에 근거해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필생의 업인 문명교류학의 고지(高地)를 넘은 그가 만년에 이르러 또 하나의 필생의 업인 통일 문제에 천착해 이제 내놓는 ‘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은, 다가올 한반도 통일시대에 대비해 솟구칠 통일방안 수립에 있어 어떤 시사점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이 특별기고는 아래와 같이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된다. / 편집자 주

<민족주의적 통일담론>

Ⅰ. 통일담론과 민족주의 (여는글 포함) / 3월 30일 (월)
Ⅱ. 민족주의는 통일담론의 철학적 기조 / 4월 2일 (목)
Ⅲ, 통일담론의 2중 패러다임 / 4월 6일 (월)
Ⅳ. 민족주의적 합의통일 (닫는글 포함) / 4월 9일 (목)

 

Ⅱ. 민족주의는 통일담론의 철학적 기조

서구의 민족론 연구자들은 철학적으로 내용이 빈약하고, 일관성이 결여되어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할 수 없는 민족론, 특히 민족주의론 분야에서는 정연한 이론이나 대사상가를 배출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양 민족론자들의 자신들의 처지로 놓고 하는 자괴적(自壞的) 비하일 따름이다. 따지고 보면, 그 원인은 민족주의 자체가 철학적으로 내용이 빈약하거나 일관성이 결여되어서가 아니라, 적중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심층적 및 광폭적 연구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경험이 일천하고 당초부터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화, 정치화한 서구에서 논리적 개념 정립이나 대사상가 배출이 불가능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오랜 역사 속에서 민족주의 실천경험이 풍부하고 바탕이 두툼한 우리 동양, 우리 한국에서 그런 대이론가, 대사상가 나와서 탈서구적 민족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냉전시대가 막을 내린 21세기에 맞다든 분단국들의 재통일이나 짓눌렸던 민족정체성 회복 등 일련의 민족문제에서 진부한 서구 이론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민족론이 필수다. 더 이상 맹목적인 추미주의이나 사대주의에 연연하지 말고 과감하게 제머리로 사고하고 실천하기만 하면 이러한 시대적 사명은 십분 수행 가능한 것이다.
    
오늘 우리는 민족통일이란 시대적 사명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참된 민족주의 담론에서 저만치 빗겨간 서구의 진부한 전철(前轍)을 고스란히 그대로 밟을 것이 아니라, 우리 나름의 창의적이고 합리적이며 성공적인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통일담론에서 사회학적인 접근방법과 인문학적 접근방법을 적절히 배합해서 선용(善用)해야 할 것이다. 정치학을 비롯한 사회학적 접근은 좀 더 미시적이고 임기응변적이며 전술적인 관점에서 주어진 문제를 분석하고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나 지침 등을 제시하는데 치중한다면,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적 접근은 보다 거시적이고 원리적이며 전략적인 측면에서 해당 문제의 기저에 자리한 근본적인 사상과 이념 및 총체적인 이론적 윤곽과 그 지향점 등을 고찰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보다 포괄적인 접근방법을 취함으로써,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기형적 편향을 지양하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접근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통일담론에서 이 두 가지 접근방법의 불편부당한 관철은 민족주의가 내재하고 있는 3대 속성이 차질 없이 구현될 때만이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분열된 민족공동체의 재결합을 위한 통일담론에서는 인문학적 접근뿐만 아니라, 통일 정책이나 방안 제시 등 사회학적 접근에서도 그 철학적 기조는 시종 민족주의여야 한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만이 이 두 가지 접근을 조화시키는 매체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민족통일은 우여곡절을 피하거나 극복하면서 순탄한 대로를 따라 매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70여년의 한반도 분단사를 돌이켜보면, 애당초 통일담론의 철학적 기조에 대한 공유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통일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사계의 통일담론에서 나타난 가장 심대한 문제의 하나는 사회학적 기능주의 접근에 치중한 나머지 인문학적 접근에서 한계를 드러낸 점이다. 다행히 근간에 이러한 한계를 인지한 인문학계 일부에서는 통일담론에 관한 인문학적, 철학적 성찰을 시도하고 나섰다. 그러나 아직은 시도에 불과해 많은 심층적 연구가 요망된다. 이 대목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작금 남북 당국자들 간에 통일과 관련해 합의된 일련의 문서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민족주의적 통일철학이 반영되어 있으며, 그것이 점차 확산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민족주의가 갈무리하고 있는 연대의식과 민족수호 의지 및 발전지향성의 3대 속성은 민족분단의 극복을 지향하는 통일담론이 받아들여 지켜야 할 철학적 기조이며, 그것이 바로 민족주의적 통일철학의 핵심인 것이다. 그 구체적 구현이나 반영에 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서 주로 남북한 당국자들이 공식 합의해 발표한 6종의 공동 성명이나 선언, 합의서를 예증(例證)으로 삼아 개진해 보려고 한다.
                            
1. 연대의식
    
원래 민족구성원들 간의 연대의식은 민족 구성의 주관적 요소인 민족의식의 자연적 발현으로서 어느 민족에게 있어서나 그 형성과 존속에서 필수불가결의 가치관이며 민족주의 고유속성의 하나다. 이것이 결여될 때, 민족의식이란 주관적 구성요소가 마비됨은 물론, 혈연이나 언어, 경제, 문화, 지역, 역사 등 객관적 요소들의 공유마저도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민족의 쇠망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연대의식은 민족구성원 간의 상호 신뢰와 상부상조, 유대감, 단결, 화해, 관용 등 인간관계에서의 자각적인 미덕으로 나타난다. 
    
한민족은 발전의 전 과정에서 이러한 민족적 연대의식의 수범을 보여 왔으며, 그것이 한민족의 성장과 민족주의 성숙에서 강력한 동력과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공생공영과 상부상조의 공동체 정신을 함양함으로써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개국이념으로부터 시작해 일찍이 향간에 유행했던 복덕방이나 향약, 품앗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상호협력과 합심을 유발하는 공동체적 연대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 연대의식은 민족분단이란 엄혹한 현실에서도 외면당하지 않고 그 맥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그 동안 남북한이 공동으로 제시한 통일방안을 비롯한 일련의 통일담론에서 우리는 이 점을 읽을 수가 있다. 분단 후 처음으로 ‘대결의 동면(冬眠)’ 속에서도 남북 쌍방은 ‘7.4남북공동성명’(1972)을 발의해 자주와 평화, 민족 대단결이란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천명하면서 “끊어졌던 민족적 연계를 회복하며,.. 남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 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 20세기가 가기 전에 남북한이 ‘하나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공동체로 통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미 빛 합의의 시대’(노태우정권 시대)에 이르러 쌍방은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였다. 모두 25조의 합의서 내용은 크게 남북화해와 남북불가침, 남북교류와 협력의 3대 범주로 구성되었으며, 근 1년에 걸쳐 합의서를 집행하기 위한 9종의 세부 합의문도 작성되었다. 이 합의서야말로 당시 필자가 심혈을 기울여 탐구하던 통일방안 구상이 거의나 반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정된 모든 통일방안의 명실상부한 모본(模本)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감히 ‘역사적인 합의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바지에 아쉽게도 쌍방 간의 의견 차이로 인해 구체적 시행을 보지 못하고 ‘상징적인 문서’로만 남게 되었다.  
    
이 합의서에 명시된 연대의식과 관련된 구체적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즉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상호 비방을 중지하고 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자원을 공동 개발하고 경제교류를 추진하여 민족경제의 통일적 발전과 민족 전체의 복리 향상을 도모한다. 사회 문화의 여러 분야 교류를 촉진하고 자유왕래를 실현하며 대외에 공동으로 진출하고 국제무대에서 협력한다. 물자교류를 상호성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진행하며, 경제관계를 무관세의 민족내부관계로 발전시킨다. 또한 여러 분야의 행사를 공동으로 진행하며 동포애로 상대방의 재난 구제에 동참한다는 등 실로 다양한 연대의식 증진에 합의를 보았으며 구체적인 실현방도까지 제시되었다. 
    
이후에 제시된 일련의 통일방안에도 예외 없이 이러한 연대의식 정신이 계승 반영되었으며,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 조치들이 명문화되고 있다. 5년간의 ‘공백의 시대’를 뛰어넘어 드디어 맞게 된 ‘접촉의 시대’(김대중-노무현 정권 시대) 7년간에는 사상 초유로 두 차례의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려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의 전망에 바야흐로 여명이 동트고 있었다. 첫 회담에서 발표된 ‘6,15남북공동선언’(2,000년)에는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는 대강(大綱)을 제시하면서 연대의식의 바탕인 ‘상호신뢰’를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 회담에서 발표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남북정상선언’, 2007년)은 앞의 ‘6.15남북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하기 위한 후속 선언이기는 하나, “쌍방은 우리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치면 민족번영의 시대,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남과 북은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중시하고 모든 것을 이에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1조)고 조문화함으로써 남북 간의 역대 어느 선언이나 성명보다도 ‘우리민족끼리’란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든 강경하고 명철한 선언이었다. 특히 이 선언 명문에는 통일담론의 철학적 기조인 민족주의의 3대 속성(연대의식, 민족수호 의지, 발전지향성)이 오롯이 함축되어 있어 선언의 심원한 함의를 깊이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함의는 다음과 같은 조항들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즉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 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를 장려하고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을 적극 추진하며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하였다.”(5조) “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6조) “남과 북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의 상봉을 확대하며 영상편지 교환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7조) 여기에서의 ‘공동의 번영’이나 ‘공리공영과 유무상통’,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 ‘특혜의 우선적 부여’, ‘인도주의 협력사업’ 같은 표현은 모두가 갈라진 겨레 간의 연대의식 함양을 지향한 뜨거운 동포애의 표출이다.
    
그러나 통일의 길은 결코 평탄치 않다. 가다 서다를 반복해 온 남북관계와 통일담론은 엉뚱한 ‘북한붕괴론’과 ‘통일대박론’에 발목이 잡혀 9년간(2008~2017년)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퇴행의 시대(이명박-박근해 정권 시대)’에 맞닥뜨렸다. 그러나 민족적 지혜를 모아 이 어두운 시대를 어렵사리 넘기고 다시 전격적인 ‘접촉의 시대’(문재인 정권 시대)를 맞는다. 2018년 다섯 달을 사이에 두고 남북 두 정상이 판문점과 평양에서 번갈아 만나 공동선언과 합의서를 발표하였다. 판문점선언에서는 새로운 평화시대의 도래를 선포하고 그에 걸맞은 단합과 협력 교류, 민족공동행사 등을 약속하고, 평양합의서에서는 민족자주와 민족자결 원칙을 재확인하고 남북관계를 통일로 이어갈 전망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두 정상의 백두산 정상 만남으로 상징되는 ‘접촉이 시대’는 뜻밖의 단절로 허무하게 흘러만 가고 있다.
    
우리 민족은 재래로 남다른 포용력을 숙성시킨 민족으로 알려져 왔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2005년부터 외국인에게 제한적인 참정권을 부여하기 시작한 일을 포용력의 미덕으로 크게 내세우지만 사실은 1천여 년 전에 이러한 미덕은 이미 이  땅에서 꽃피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일례는 고려가 채택한 이른바 ‘내자불거(來者不拒, 오는 자 막지 않는다)’의 포용적 귀화책이다. 지금 남한의 275개 성씨 중 근 절반에 가까운 130여개 성이 외래성이다. 인구 230만밖에 안되던 고려 초 100년간 무려 17만 외래인이 고려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인구의 약 7.4%에 달하는 많은 외래인이 일시에 귀화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의 ‘내자불거’의 포용적 귀화정책 때문이었다.
    
고려는 튼튼한 국력과 높은 문화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귀화인에게 최대의 포용과 우대의 선정을 베풀었다. 호적에 편입시키고 성을 하사할 뿐만 아니라, 관직을 제수하고 작위와 식읍을 내리며, 안착용 주택과 전답, 미곡, 의복, 기물, 가축 등까지도 시여하였다. 지어 도래한 범죄자들의 안전을 염려해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안착시키는 세세한 배려까지 돌렸다. 그리하여 오늘의 대한민국 귀화인 중 60%가 고려시대에 한국인이 된 외국인이다. 이러한 포용과 우대 속에서 귀화인들은 고려문화의 용광로에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혈통을 제외한 나머지 민족구성의 주․객관적 요소들은 신속하게 고려화(한민족화)됨으로써 단일민족의 당당한 구성원이 되었다. 이렇게 고려는 다민족의 단일민족화, 다문화의 단일문화화에 성공함으로써 역사상 다민족문제 해결에서 수범을 보였다. 여러 민족 간에 포용에 바탕한 연대의식이 없었다면 이러한 민족문제 해결은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민족주의 속성의 하나인 민족구성원 간의 연대의식은 유구한 민족사에서 뿐만 아니라, 분단시대인 오늘에 와서도 통일담론의 철학적 기조로서 통일방안을 비롯한 제반 통일담론에서 핵심논제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통일담론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연대의식에 속하는 여러 가지 내용을 선언이나 협약으로 기제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원론적인, 철학적인 분석이나 이해는 간과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것은 비록 둘로 갈라졌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민족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계승 고수하면서 연대의식을 굳건히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이 통일방안을 비롯한 통일담론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2.  민족수호 의지    
   
우리의 민족사가 보여주다시피, 민족주의의 한 속성인 민족수호 의지는 민족의 흥망성쇠와 직결된 중요한 가치관으로서 우선, 외침으로부터 민족의 독립과 자주를 지켜내는 데서 나타난다. 우리 민족은 역사상 1천1백여 차례의 외침과 간섭을 물리치고 독립을 지켜냈다. 고려는 거족적으로 궐기해 강적 몽골의 125년간의 간섭을 막아냈다. 그런가 하면 유교사상으로 인해 문치주의 문약(文弱)에 빠졌다고 색안시(色眼視) 당하던 조선은 중근세의 세계적 격랑 속에서도 단일민족 왕조를 518년간이나(세계사에서 드문 일) 유지해 왔다. 특기할 것은 어떠한 외래사상도 일단 한국에 들어오면 한민족의 민족수호 의지에 감응되어 열렬한 호국애족의 사상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문치나 성리에만 안주하던 유생문반들(의병의 80%)도 일단 나라와 민족의 수난 앞에서는 의연하게 총대를 잡고 민족 수호를 위해 결사분전하는 용맹을 보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민족이 분열된 경우에 민족수호 의지는 민족의 통일과 단결 및 동질성을 복원하고 지키는 데서 나타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족구성의 객관적 요소들인 언어, 문화, 역사, 경제, 지역 등의 동질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금 일부에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남북한의 이질화가 심화되면서 동질성이 점차 사라져 급기야 ‘타민족’일 수밖에 없다는 패배주의적 ‘타민족론’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타민족론’은 ‘우리는 하나’라는 캐치프레이즈 속에 전개되는 통일담론에 상치(相馳)되는 백해무익한 ‘분열론’이다.
    
그밖에, 민족수호 의지는 세계 속에서의 민족의 당당한 위상이나 존엄을 지키면서 응분의 국제적 역할을 다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진취성을 천부적으로 체질화하고 있는 한민족은 슬기로운 지혜와 남다른 근면성과 낙천성으로 인류역사의 발전에 나름대로의 기여를 함으로써 일찍부터 세상에 알려지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민족분단이란 엄혹한 여건 속에서도 민족을 지켜내고 빛내는 민족적 저력에 대해 한결같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민족수호 의지의 대의(大義)는 얼마간의 온도 차이는 보이지만, 남북 쌍방이 합의 발표한 일련의 통일방안에서 시종일관 변함없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첫 합의문서인 ‘7.4남북공동성명’에서 제시한 조국통일 3대 원칙 가운데서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라는 1조와 “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라는 3조는 바로 이러한 민족수호 의지의 강력한 표출이다. 남북 간의 대립과 갈등이 심각한 시기에 쌍방이 가까스로 합의한 이 조국통일 3대 원칙은 후일 통일방안을 비롯한 모든 통일담론에서 민족수호 의지를 선도하고 규제하는 철학적 기조가 되었다. 
    
이 철학적 기조가 1990년대 초의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6조)하며,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자원의 공동개발과 물자교류, 합작투자 등 구체적 경제교류와 협력 방안으로 구체화되었다. 6.15남북공동선언과 10.4남북정상선언에 이르러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민족끼리’란 정신으로 국제무대에서 ‘민족 이익’과 ‘동포 권익’을 위해 협력할 것(8조)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합의서 모두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와 자결의 원칙’을 다시금 확인한 다음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등 보다 진취적이고 심원(深遠)한 통 큰 철학적 밑그림을 그려놓았다. 

3. 발전지향성 
    
민족주의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상술한 바와 같이 연대의식과 민족수호 의지를 민족주의의 2대 속성으로 규정하는데 대해 크게 의문시하지 않고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발전지향성을 세 번째 속성으로 설정하는데 대해서는 창의적인 생소한 개념인 것만큼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십분 이해된다. 그것은 종래 민족주의 속성에 대한 불완정(不完整)한 편견이 학계와 여론을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지금까지 민족주의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오해와 왜곡은 민족주의의 ‘폐쇄성’이나 ‘배타성’ 운운이다. 이른바 ‘폐쇄적 민족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가 마치 하나의 고유한 태생적 유형인양 민족주의에 제멋대로 붙여진 부정적 딱지다. 그런가 하면 민족주의의 부분적 ‘진보성’을 긍정하는 일부 논자들마저도 민족주의의 ‘폐쇄성’이나 ‘배타성’의 대척(對蹠) 개념에서 이른바 ‘열린 민족주의’를 무슨 새롭게 발명한 민족주의의 한 유형처럼 들먹이고 있다. 
    
이러한 무분별한 주장들은 모두가 민족주의 고유 속성의 하나인 ‘발전지향성’에 대한 무지이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족주의에는 근원적으로 ‘폐쇄적 민족주의’니 ‘배타적 민족주의’니, 또 무슨 ‘열린 민족주의’니 하는 별종의 주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오로지 민족주의 그 자체만이 있을 뿐이다. ‘폐쇄적 민족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족폐쇄주의’나 ‘민족배타주의’로서 역사의 보편가치로 정립된 참 민족주의와는 전혀 무관한 이탈적 주의주장일 따름이다.  
    
일반적으로 발전지향성이란, 말 그대로 남보다의 진보를, 남과의 겨루기에서 승리를 염원하고 추구하는 이념이자 정서다. 민족주의가 일찌감치 사라졌다고 하는 유럽에서 운동경기 때마다 폭발하는 응원 광기의 동인(動因)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남과의 겨루기에서 승리를 추구하는 민족주의의 순수한 고유 속성으로서, 자연스럽게 발산되는 발전지향성으로 밖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이것은 민족(민족국가)의 발전이나 융성을 지향하는 선의의 경쟁이지, 결코 타자에 대한 능멸적(凌蔑的) 배타나 시기는 아니다. 개개인의 이러한 지향이 민족공동체의 연대의식을 통해 표출되는 것이 바로 민족주의 ‘발전지향성’ 속성이다. 우리의 민족사에서 여실히 입증되다시피, 진정한 민족주의는 민족의 발전을 지향해 민족이나 민족국가의 경계에 빗장을 잠그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공생공영을 추구하며 폐쇄와 배타가 아닌 개방과 수용을 추구하는 이념이며 태도다. 
    
발전지향성을 포함한 민족주의 속성은 원래 민족 구성의 주․객관적 요소에 의한 필연적인 소산이다. 민족은 혈연, 언어, 역사, 지역, 경제, 문화와 같은 객관적 요소와 이러한 요소들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한 귀속의식이나 연대의식, 애족사상, 민족수호 의지, 발전지향성, 민족정신 같은 주관적 요소에 의해 동질성과 일체성, 정체성이 보장됨으로써 비로소 완벽한 민족이 생성되는 것이다. 민족학에서는 이 두 가지 요소, 즉 객관적 요소와 주관적 요소가 다 갖춰진 민족을 완전무결한 대자적 민족(對自的 民族, Nation für sich)이라 하고, 객관적 요소만 갖추고 주관적 요소가 결여된 민족은 즉자적 민족(卽自的 民族, Nation an sich)이라고 한다. 이러한 즉자적 민족은 민족정신이나 기개가 빈약한 기형적 민족으로서 생물학적 오합지중(烏合之衆)에 불과하다. 
    
보다시피, 우리 민족과 같은 대자적 민족이 지니고 있는 연대의식이나 민족수호 의지, 그리고 발전지향성 같은 민족주의 속성은 민족 구성의 주관적 요소의 필연적인 발현으로서 시종 민족의 생성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이 존재하는 한 민족주의는 간단없이 존속되며, 그 속성에서 발원되는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기능도 지속된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도구적이거나 임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으로 장기간 작동하는 일종의 사회현상이다.
    
지난 분단 70여 년 동안 남북 간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공동 성명이나 선언, 합의서 6건의 서명 당사자를 보면 남한은 10명 중 5명, 북한은 3명 중 3명이 정상급이다. 적어도 이들 8명 정상이 동의 서명한 통일방안에는 통일을 이 시대의 민족 지상 과제로 인지하고 민족 성원 간의 연대의식과 민족수호 의지로 민족통일의 숙원을 실현해야 한다는 민족주의 속성의 당위성에 공히 합의하였다는 사실을 앞의 여러 통일방안 분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민족주의의 다른 하나의 속성인 ‘발전지향성’의 구현으로 통일강국을 이루어내겠다는 강한 의지도 곳곳에서 표명하고 있다. 
    
모든 통일방안의 모태인 ‘7.4남북공동성명’에서는 “조국통일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에 부합되는” 합의사항이라고(7조) 본 성명의 밝은 전망을 예시하였으며,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서언) ...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제6조)라고 합의함으로써 통일은 한민족 공동체 내에서 서로의 발전을 지향하는 민족적 의제임을 확인하였다. 한반도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남북 정상 간에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에서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2조)라고 천명하였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양보를 기꺼이 수락함으로써 합의에 이르는 회담(담판)사상 유례 드문 전범을 보여준 이 공동성명서는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갈 것”이라는 발전지향성까지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 통일의 지향성을 계승한 ‘10.4남북정상선언’은 ‘우리민족끼리’나 ‘민족번영’, ‘민족경제’ 같은 민족의식이 짙게 응축된 내용들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하였다”(5조)고 규정함으로써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남북 공동의 번영에 대한 온 겨레의 발전지향적 염원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이어 발표된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은 선행한 ‘6.15남북공동선언’과 ‘10,4납북정상선언’에서 밝힌 통일방안의 기조를 대체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 선언이 민족의 공동번영을 앞당기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서 ‘역사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였으며(‘9.19선언’ 서언), 2032년 하계올림픽을 공동개최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구체적 지향 목표(‘9.19선언’ 4조 2항)까지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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