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 [타산지석] 중국 핵잠수함의 30여년 전 세계 최장항행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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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2-04 10:39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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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403호 핵잠수함 © 자주시보, 중국시민
[타산지석] 중국 핵잠수함의 30여년 전 세계 최장항행 비화
중국시민 : ⓒ 자주시보
미군 사드의 한국 배치결정이 공포되어 무척이나 시끄럽던 2016년 7월 중순, 필자는 정문일침 87편 “고수는 민간에 있다더니”(www.jajusibo.com/sub_read.html?uid=28601)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 6월 초 싱가포르에서 제15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가 열릴 때 중국 쑨젠궈(孫建國)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이 한민구 국방장관과 양자회담을 진행하여 사드가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는데, 한민구 장관이 중국이 과대평가한다고 반박했다는 건 한국에서 널리 보도된 바이다.
쑨젠궈 부총참모장의 경력은 한국언론들이 제법 구체적으로 전했는바, 가장 주목되는 게 핵잠수함의 함장(중국어로는 팅장艇长정장)경력이다. 핵잠수함은 이른바 “제2차 타격능력”의 핵심으로서 함장은 최악의 경우 나라가 적의 핵타격을 받아 정부가 붕괴된 상황에서 적에게 핵공격을 가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연히 제1인자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결정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평소의 훈련항행에서도 밖의 상황에 대처해야 되기에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된다.
중국이 핵잠수함부대를 차차 공개하면서 알려졌지만, 핵잠수함의 승조원들은 출항 할 따마다 유서를 써서 기지에 두고 간다. 핵시설과 미사일 등 위험요소들이 많고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긴장하여 핵잠수함으로 특수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경우에는 전쟁가능성도 고려해야 되기 때문일 것이다. 쑨젠궈의 구체적인 항행횟수야 극비에 속하겠지만, 유서를 여러 번 썼으리라는 건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는 항행을 모두 무사히 마치고 지금 부총참모장으로 활약한다. 이런 사람의 종합능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우리말로는 엄청 독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샹그릴라 대회에서 사드배치반대를 피력한 원고를 갖고 와서 읽었고 말로도 표명했다면 개인의견이 아니라 중국인민해방군의 최고통수권자 시진핑 주석의 심열을 거치고 시 주석의 의견도 반영된 것인데, 이렇다 할 경력을 내세울 게 없는 한민구 장관이 아예 무시해버렸으니 중국인민해방군 내부에서 얼마나 큰 모욕으로 받아들였겠느냐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금년에 신설된 중국인민해방군 육군사령원으로 임명된 리쭤청(李作成)은 1979년 대베트남자위반격전에서의 전투영웅이었고 해방군의 고위층에는 1980년대 후반까지 베트남과 벌린 고지전에서 생사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한국에서는 1979년의 전쟁이나 그 뒤의 공방전을 놓고 중국이 일방적으로 지거나 밀렸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꽤나 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실전으로 미래의 간부들을 훈련시킨다는 방침에 따라 여러 군구의 부대들이 번갈아 고지전에 참가했던 것만 보아도 중국이 여유롭게 싸웠음을 알 수 있다.
적들과 코를 맞대고 싸웠던 육군들과 물밑에서 위험을 이겨나간 쑨젠궈 같은 해군들이 죽이 잘 맞아 이른바 강경파들의 힘이 세졌다는 건 눈이 제대로 박인 사람이라면 다 보는 바이다. 당분간 주요방향이 남해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서 한국의 사드배치를 눈감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이 없겠다.]
2018년 1월 현재, 1953년 생인 리쭤청은 중공중앙 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참모장이고, 1952년 생인 쑨젠궈는 부참모장이다. 한국에서는 시진핑 시대에 승진한 사람들이 시쟈쥔(习家军 직역하면 시씨 집안 부대)에 속한다면서 시진핑 주석이 측근, 심복들을 긁어모으는 듯이 묘사하는데, 중국을 몰라도 너무나도 모르는 소리다.
리쭤청은 한국에서도 엔간히 소개되었다시피 1979년 베트남을 상대로 한 자위반격전에서 전투영웅이 된 사람이다. 그때 참군 10년 차인 연장(连长, 중대장)으로써 100여 명 군인을 지휘하여 고지점령전투를 성공적으로 치러 연(중대)가 집체 1등공을 세우고 “첨도영웅연(尖刀英雄连)”으로 명명되었으며 리쭤청 본인은 중앙군사위원회가 수여한 “전투영웅”칭호를 받았다. 당시 표창 받은 전투영웅들 가운데서 열사들이 많이 선전되었고,
산 사람들도 물론 널리 선전되었으나 명성을 따지면 리쭤청은 앞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전투에서 베트남군과 마주쳐 동시에 사격했는데, 그는 적수를 사살했고 적수는 그의 총개머리만 명중했다는 등 사적이 책에 실렸어도 그 많은 영웅들 중에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필자처럼 그 시기를 거쳤고 군대에 관심 많은 사람도 그를 몰랐으니까.
그러나 수십 년 지나 신설된 육군 총사령으로 승진했고 그 작전 참가자들 중에서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으로 되었다. 당시 리쭤청보다 더 눈에 띄는 전공을 세웠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얼마 후 제대했고 어떤 사람은 부사장(副师长, 부사단장)에서 머물렀으니, 대체로 지식과 능력이 더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쭤청은 싸움에서도 용감했지만 전후에도 꾸준히 공부했다 한다.
1979년 자위반격전 시기 국방부장 겅뱌오(耿飚, 경표)가 베이징에서 긴장하게 보냈는데, 그의 비서 중 한 사람이 청년 시진핑이었으니 남으로 베트남을 치고 북으로 소련을 경계하는 대작전 지휘과정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많은 걸 배웠다 한다.
시진핑의 직무가 공식자료에서는 군사위원회 판공청 비서인데, 그때 현역군인으로서 무슨 등급이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만, 4년 뒤 부퇀급(副团级, 부연대급)인 현의 부서기로 전근한 걸 보면 1979년 당시 부연대급이었거나 적어도 영급(营级, 대대급)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당시 직무나 직위가 리쭤청보다 위이다. 군대란 경력을 따진다. 쟝저민(강택민), 후진타오(호금도)와 같이 군인경력이 없는 영도자들을 대할 때와 달리 리쭤청 같은 군인들이 시진핑 주석에게 친근감, 동질감을 느끼고 복종의식이 한결 강할 건 당연한 일이다. 시진핑 주석이 숱한 사람들의 이익에 영향을 끼치는 어려운 군대개혁을 실현한 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1979년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공개선전되었던 리쭤청과 달리 쑨젠궈는 핵잠수함 지휘관 출신이어서 기밀유지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1985년 11월 20일부터 1986년 2월 18일까지 403핵잠수함의 함장(중국어로는 팅장艇长정장)으로서 자체항해능력(自持力) 시험 세계기록을 세웠다는 건 인터넷에 떴고 사진들도 나왔지만, 구체적 내용은 별로 언급되지 않았다.
요즘에야 필자는 어느 잡지에서 쑨젠궈가 그 시험에서 한 역할을 알게 되었다. 1970년 12월 26일에 첫 핵잠수함을 보유하여 경험을 쌓던 중국은 1985년에 장기간 자체항행능력을 시험하기로 결정했으니, 70일을 버티면 성공이고 90일을 견지하면 대성공이었다. 이는 70일이면 프랑스 해군의 기록을 깨고 90일이면 미국 해군이 여러 해 유지한 84일 기록을 엿새 차이로 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기록을 세운 미군들이 대부분 들것에 실려 나왔던 것과 달리 걸어서 나오는 것도 목표의 하나였다.
헌데 바다에 나가 한 달도 되지 않아 연수(軟水)품질미달이라는 사고가 생겼다. 꼬박 하루 검사했으나 흠집을 찾지 못해 물의 염소함량이 자꾸만 올라갔다. 보고를 받은 해군 사령원 류화칭(刘华清 류화청, 뒷날 쟝저민 시대에 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활동했다)이 즉시 귀항하여 부두에서 검사, 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쑨젠궈는 헛방 치고 돌아가기 싫어 동력기관 책임자들을 불러다가 연구한 끝에 바다에서의 수리를 결정했다. 섭씨 200도 좌우의 뜨거운 수천 개 동관(구리관)들을 한 조 한 조 격리하여 검사하여 최단시간 내에 새는 점(漏点)을 발견해 보수했고, 수질이 만족스러워졌다.
1986년 2월 18일, 90일 간 지구 한 바퀴 도는 데 맞먹는 23625마일을 항행하고 그중 잠수 69일 동안 18868마일을 항행했으며 최장잠수기록 25일을 기록한 쑨젠궈와 전우들은 지친 모습이었으나 당당하게 걸어서 부두에 나타났다.
▲ 90주야 장거리항행을 마치고 돌아온 403잠수정을 환영하는 기념사진 © 자주시보, 중국시민
1985년 당시 쑨젠궈가 해군 사령원의 명령을 그대로 집행해 귀항했더라면 중국 핵잠수함이 수리를 거쳐 그 후에 새 기록을 세울 수도 있다. 허나 첫 시험의 실패는 두고두고 핵잠제조자들과 사용자들의 마음에 그늘을 던지게 된다. 쑨젠궈가 잠수함과 부하들에 대한 충분한 요해에 기초하여 결연히 해상수리를 결심하고 실행했기에 항행 중 고장처리의 소중한 경험을 쌓았고 첫 장거리항행시험에서 세계기록을 세웠다는 영원한 자랑거리를 만들었다. 군대란 사기를 먹고 사니까, 쑨젠궈와 전우들의 성공이 현재 중국 핵잠수함부대의 강한 자신감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을까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쑨젠궈가 우선 해군 내부에서 다음 전군 범위에서 얼마나 유명해졌겠냐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리쭤청과 쑨젠궈는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과 과단한 조치로 생사고비를 넘기면서 이름을 날린 뒤 30여 년이 지나 군인으로서 최고급 자리에 올랐다. 경력과 능력이 수없는 검증을 거쳤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2017년에 한국군 박 모 대장 부부의 “갑질”사건이 터졌을 때, 어느 언론은 한국군에서는 장군별을 달기도 어렵지만 대장으로 되려면 30년 쯤 잘못이 없어야 하고 처분 받은 기록이 없어야 된다면서 운과 능력이 다 따라줘야 한다고 썼다.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대장으로 진급한 사람이 군사능력과 상관없으면서도 군인들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는 갑질을 했거나 부인의 갑질을 허용해 망신했으니 참으로 황당하고, 예전의 진급심사과정에서 왜 그런 갑질들이 드러나지 않았는지도 이상스럽다. 그리고 개인적인 갑질을 하지는 않았으나 군에서 최고직위를 역임하면서 한국군 장교들의 선망대상으로 되었다는 남재준, 김관진 등 거물들이 대통령 모시기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사법기관을 드나드는 걸 보면, 진급심사에 문제가 심각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2017년 말에 문재인 정부가 한국군의 장군 수자를 줄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장군진급경쟁이 한결 치열해지겠는데 육사 기수를 따지는 풍토부터 좀 변하기를 바라고, 능력과 의지도 믿을 만한 검증방식이 생기기를 바란다. 중국을 괜히 무시하는 한국인들은 이런 소리가 불쾌하겠다만, 두 나라의 현역 장군들을 비교해보면 덮어놓고 중국을 깔 자신이 생기는가? 누군가 혹시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아 중국과 맞서면 틀림없이 이긴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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