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심히 미약하다. 처음 젤렌스키가 2024년 10월 북한군 파병설을 제기하고, 한국의 국정원이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 여기에 동참했다. 하지만 10월 중순까지만 해도 우리의 혈맹 즉 미국과 나토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러더니 미 대선이 막바지를 달리면서 우리의 맹방들은 ‘확인했다’를 남발했다. 뭐가 나와도 ‘확인했다’고 말했고, 덩달아 국정원도 ‘확인했다’를 입에 달고 있었다. 파병 숫자도 처음엔 1,000명 수준으로 다소 조신하게 출발하더니 이내 3,000명, 4,000명, 7,000명, 8,000명 그리고 급기야 10,000명을 넘기더니 가까스로 12,000명 수준에서 멈춰 섰다. 어차피 ‘확인’ 못할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 또 그냥 마구 부른다고 북한이 항의할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숫자는 순전히 부르는 사람 마음이었다.
젤렌스키는 현재 대통령이 아니다. 전시계엄을 선포하고 그냥 하고 싶은 만큼 대통령질 하면 된다. 그래서 그 전직 대통령 젤렌스키는 미 대선 직전 한국의 KBS인터뷰를 통해 이제 곧 북한군과 교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일부 ‘성질 급한’ 북한군은 10월 말 이미 교전을 시작해서 부대가 다 죽고 혼자만 살아남아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포로가 되어 인터뷰를 했는데 말이다. 젤렌스키는 그건 아니란다. 그럼 뭐지?
이 시점, 즉 10월 14일 북한 파병설 첫 발표로부터 11월 5일 미 대선까지 국면에서의 북한군 파병설이 정치적 목적은 이랬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먼저 미국으로서는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 침공을 통해 확전하는 것이 정치적 목표였다. 바이든 정권으로서는 그래서 북한군 파병설은 대러 장거리미사일 사용을 ‘허가’할 아주 좋은 구실이 되는 것이었다. 우선 어태큼스 블록I 300킬로짜리 발사를 허가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이러한 미국산 혹은 영국/프랑스산 장거리미사일 운용 능력이 없었다. 독자위성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이는 나토군의 직접 참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여기에 대해 러측은 강력히 반발, 3차 세계대전 위험을 경고했다. 하지만 바이든 정권은 오불관언이었다.
둘째, 우크라이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북한군 파병설은 나토로부터의 지속적인 전비와 무기지원을 압박, 유도할 적절한 고리였다. 이미 유럽 나토 회원국의 우크라이나 피로가 가증되는 조건에서 새로운 외부충격을 통해 유럽 나토의 전의를 끌어 올릴 시급한 필요가 있었다.
북한군 파병설 제1국면에서 한국이 위성사진 몇 장을 흔들면서 홀연히 등장한 일은 국제사회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미 유럽 나토국의 경우 장비란 장비는 거의 탈탈 턴 상태였다. 미국으로서도 우크라이나전쟁만 전쟁이 아니었다. 서아시아 즉 가자전쟁, 레바논전쟁 그리고 나아가 이란과의 전쟁을 위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최종’ 전쟁 즉 중국과의 전쟁을 위해서도 더 이상의 장비 고갈은 선을 넘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전부터 한국의 포탄과 특히 ‘젊은 피’, 즉 병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터라 미국으로서는 금세 파병이라도 할 듯이 덤벼드는 윤석열의 혈기는 보기만 해도 흐믓한 일이고, 또 그래서 미국 역시 그런 방향으로 물밑 작업을 했었지 싶다. 더군다나 윤석열은 이미 2024년 봄부터 친위쿠데타를 ‘결심’했던 것으로 보이는지라, 미국의 쿠데타 승인과 묵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했을 거라고 충분히 추정해 볼 만하다. 한국은 11월 그렇게 국정원 제1차장 홍장원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고 그 직후 ‘2급 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10명 이내의 국정원 직원’을 파견했다고 TV조선이 단독 보도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홍장원은 악명 높은 우크라 비밀정보부SBU를 접촉하기도 했다. 이는 윤석열이 제거하라고 지시했다는 정치인들 명단을 받아 적은 메모지가 바로 SBU의 것이라는 데에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북한군 파병설은 바이든-젤렌스키-윤석열, 이 ‘마의 삼각지대’ 속에서 불가사리처럼 몸집을 불려 나갔다. 이와 함께 북한군의 몸집도 커져나갔다. 하지만 제1국면은 12.3사태 즉 친위쿠데타로 변곡점을 맞게 되었다. 제2국면이 시작된 것이다. 11월 말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이 무기 ‘구매차’ 방한한 것은 그 정점이었다. 하지만 구매상담은 ‘일단’ 실패했다. 아니 러시아의 초강경 경고로 인해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12.3 직전 까지는 말이다.
12.3 친위쿠데타 자체가 아니라 그 쿠데타의 ‘실패’는 바이든-젤렌스키-윤석열 이 전쟁광 3총사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었다. 물론 11월 5일 바이든의 대선 참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대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노익장을 과시하던 바이든은 꿋꿋하게 ‘대확전’의 길로 나가고 있었다. 올해 1월 20일까지는 어쨌든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12.3 실패는 무기고가 완전 털리는 것에 비할 일이었다. 12.3이 성공했다면 넘쳐나는 한국의 ‘젊은 피’ 즉 한국군 파병도 한번 노려볼 만하지 않았을까. 전쟁광 3총사 중 윤석열이 털려 나갔음에도 젤렌스키는 더욱 분발했다. 12월 중순 준비된 가짜 파병 ‘증거’들을 마구 던졌다. 퍼붓다시피 했다. 여기저기서 북한군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물론 시나리오상으로 말이다.
1월 9일 독일 람슈타인 미군기지에서 러시아 침공 이후부터 해오던 우크라이나 지원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미 1월 초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침공은 러시아와의 종전협상에 대비한 ‘바게닝칩’이라고 말했다. 람슈타인회의에서 젤렌스키는 쿠르스크 침공을 ‘우크라이나전쟁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작전’이라고 주장했다. 둘 다 참 얼척없는 소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마라화나 중독의 B급 코미디언의 생존의지와 축재능력은 높이 살 만하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2명의 북한군 포로가 ‘생포’되었다. 사실 지난해 11월 말 BBC 기자의 쿠르스크 전장 취재에서 나온 우크라이나 병사의 푸념이 있었다. 바라기로 ‘신분증’을 지참한 북한군 포로를 생포하라는 상부 지시와 만일 생포하면 포상휴가 등 두둑한 보상이 있다는데 안 보이는 걸 어떻게 하냐는 투정이었다. 없으면 만들면 될 일 아닌가.
그림1_1월 11일 생포되었다는 북한군 포로 심문장면(‘정찰국 2대대 1중대’라는 답변에서 ‘정찰국’을 ‘정찰대대’라고 통역하고 있는 장면이다) ⓒX에서 캡처
이 2인의 북한군 포로가 생포됐다는 날이 1월 11일이다. 그런데 며칠 뒤 15일 전후부터 북한군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전선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20일경 젤렌스키는 직접 생포되었다는 북한군 포로의 심문 장면을 X에 올렸다. 북한에서는 기르지 않는 콧수염을 기른 젊은 병사가 드디어 자신의 소속을 밝혔다.
저 포로(?)가 자신의 소속이라고 밝힌 ‘정찰국 2대대 1중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정찰국 제24정찰대대 1중대’는 말이 될 수 있다. 저 포로(?)는 바로 며칠 전 자신이 소속된 부대명을 몰랐다는 말이다.
그림2,3_북한 정찰총국(2009년 정찰국에서 확대개편)의 기능과 예하부대 ⓒ나무위키
따지고 보면 1월 11일 ‘생포’된 북한군 포로는 ‘4번째’ 첫 번 째 포로다. 1번은 10월 달이었다. 우크라이나 시도 하룻밤 새 외워서 읊는 포로였다. 물론 가짜였다. 2번은 앞서 말한 붕대를 칭칭 감고 등장해 “‘친구’ 혁철이도 죽고... ”하면서 대사를 말하던 10월 말 포로였다. 이 역시 가짜다. 북한에선 ‘친구’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젤렌스키 본인이 11월 초 KBS 인터뷰에서 아직 교전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손발이 안 맞았던 거다. 세 번째 첫 번째 포로는 12월 말이었다. 초로의 남방계 외모의 중늙은이가 잡혔다는 데 바로 다음 날 죽었단다. 그런데 이때 공개된 사진이 문제였다. 미국의 레딧에 2022년 등장했고 또 그 10년 전에도 있었던 사진이란다. 이 역시 조작이었다. 그리고 사진 자체도 손 댄 흔적이 역력했다. 아주 C급 조작물이었다. 그런 연후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우리말을 하는 네 번째 포로가 등장한 것이다. 그 병사가 소속을 밝힌 것이다. “정찰국 2대대 1중대”라고 말이다. 영역된 자막에는 “Reconnaissance battalion...”이라고 표기되었다. 옮기자면 “정찰대대”라는 말이다. 영역 자체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보자, 이 병사는 어제까지 자신이 속해있던 부대가 북한의 ‘정찰국’이었다고 했다. 정찰국은 과거 명칭이고 현재는 쓰지 않는다. 2009년 이후 지금은 ‘정찰총국’이다. 그런데 그 정찰총국 예하에 정찰국도 있다. 하지만 눈 닦고 봐도 그 정찰국 예하 수많은 부대가 존재하는데 그 중 ‘2대대 1중대’라고 불릴 부대는 없다. 처음 “2대대 1중대”라고 답했다가 통역이 못 알아듣고 재차 묻자 “정찰국 2대대 1중대”라고 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폭풍군단과 더불어 북한 최고의 엘리트부대라고 하는 정찰총국 예하부대라고 보기엔 한 참 많이 부족하다.
1월 27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전선에 북한군이 철수했다고 보도했다. 그 며칠 뒤 1월 30일 드디어 뉴욕타임즈가 붙었다. ‘더 이상 전선에 북한군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 뒤 2월 4일 한국 국회에서 국정원이 뉴욕타임즈 보도대로 전선에 북한군이 철수했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2월 7일 BBC는 북한군이 다시 왔다고 보도했다. 아마 이번주 국정원이 다시 국회에 북한군 다시 왔다고 보고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까지가 북한군 파병설 제2국면이다. 대략 12월 3일 윤석열 친위 쿠데타에서 시작해 뉴욕타임즈 기사 기준 1월 15일 전후 북한군 철수까지다. 2월 7일 BBC 보도가 맞다면 이제부터 제3국면이 시작된다. 그런데 김이 다 빠졌다. 여기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트럼프와 머스크가 ‘범죄집단’ 미국제개발처USAID를 ‘때려잡은’ 탓이 크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언론의 10분의 9는 바로 이 USAID 돈으로 꾸려 왔기 때문이다. 돈줄이 끊겼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군 파병설 관련 각종 뉴스나 소위 ‘증거’의 생성 및 전파 루트는 대략 이랬다. 우크라 특수작전군SOF 해당 부대가 가짜 뉴스를 조작해 자신들이 운영하는 매체나 봇 등에 공개하면, 그 매체 규모가 정말 보잘 것 없는데 한국의 특히 연합뉴스 등은 어떻게 다 알아내고 이를 보도하고, 나머지 한국 매체는 이를 베낀다. 그런데 특수작전군 예산도 물론이고, 나머지 모든 매체의 자금줄이 말라버린 것이다. 이제 방법은 유럽연합이 돈을 대는 것인데 여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연합 등 한국 매체가 자신의 통신원을 활용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한국 통신원 혹은 특파원도 우크라이나 전장 보도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는 실은 무망한 일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고 박완서 작가는 작품에서 물었다, 북한군은 식용이 아니므로, 누가 다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젤렌스키는 12,000명 북한군중 50%가 손실을 입어 철수했다고 말했다. 당연 그 어느 누구도 검증해 본 적이 없다. 아니 한국인 전부를 다 통틀어 쿠르스크 북한군을 본 사람은 없다. 단 한 명의 한국인 기자도 쿠르스크에 간 적이 없고, 단 한 명의 서방기자도 러시아쪽 쿠르스크에 간 적이 없다. 패트릭 랭카스터라는 탐사보도 기자가 북한군이 배치되었다는 체첸 아흐마트특수부대 동반취재를 한 영상은 있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있다. 흥미롭게도 이 부대 사령관 알라우디노프가 자기 부대 ‘코리안’을 소개한 적은 있다. 콜사인 ‘디마’라는 이 코리안은 러시아말이 모국어인 사할린 출신 고려인이다. 190개 이상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러시아에 아시아계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러시아 포함 중앙아시아거주 고려인만 해도 수십만이다. 가짜 신분증으로 이용된 것은 투바니 부랴트공화국이니 외모상으로는 몽골인과 구분이 안 된다. 이런 인종적 특성을 우크라이나 특수부대는 십분 활용한 셈이고 전시니 다 이해할 만하다고 치자. 손자의 명언은 그래서 지금도 진리다. ‘전쟁은 속임수다(兵者詭道也)’
그럼 ‘그 많던 북한군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바이든-젤렌스키-윤석열, 바이든은 이미 패배한 전쟁을 트럼프의 패전으로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확전을 재촉했다. 평화는 곧 권력 상실이므로 젤렌스키 역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끌기 위한 모멘텀이 필요했다. 윤석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 무기 지원이나 최악의 경우 한국군 참전을 통해 한편으로 친위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지원 가능성을 탐색하고, 다른 한편으로 현지 남북교전과 국내계엄을 링크할 경우의 수를 배제하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외환죄’ 여부에 대한 국정조사 없이 이는 추론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11월 5일 미 민주당의 대패, 12월 3일의 좌절, 나아가 종전을 강력히 주장하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본질에 있어 확전과 같은 말인 북한군 내러티브는 단지 젤렌스키 하나가 계속 끌고가기엔 어림도 없게 됐다.
쿠르스크의 북한군은 위 3자 연합이 만들어낸 정치적 ‘시뮬라크르simulacre’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통킹만 조작사건 그리고 21세기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날조의 맥을 계승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원본 없는 이미지’다. 원본이 없는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투사된 정치적 의도와 조작자의 기술만이 이 복제된 세계의 원본이다. 지금까지 거의 수십 종의 가짜 이미지가 제작되어 유통되었다. 누구도 묻지 않았다. 기사의 말미 영혼 없는 클리셰만 있었을 뿐이다. 즉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허사 말이다. 언론의 사명은 진위를 확인하는 것인데 이런 점에서 서방 언론과 한국 언론은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했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군정보국이 조작해 낸 이미지나 영상 모두에 대한 논평은 지면상의 제한으로 이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유형별로 1)소위 북한군 포로들의 심문 영상과 사진 2)연해주 인근 북한군이라는 어떤 집단의 배급영상, 이동장면 그리고 드론이 촬영했다는 북한군 전투신 등 동영상 3)당원증, 군인 신분증 등 각종 신분증 4)북한군이 작성했다는 일기, 편지 등 기록물 등으로 나뉜다. 한국 언론은 이 모든 소위 ‘증거’에 대한 검증을 포기한 지라, 차라리 어떤 중립적인 기관이나 기구가 이를 검증해 백서라도 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적절해 보인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확인, 검증한 바로 우크라이나 군정보국이 제시한 그 어떤 자료도 반박 불가능할 정도로 오염되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작 실력이 향상되긴 했지만, 우크라이나 군정보국팀이 다루기에 남북한은 역사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너무나 멀고 먼 나라다. 결국 우리가 봉착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간단한 하나의 물음이다. 즉 북한군 파병이 사실이라면 왜 저렇게 많은 조작이 필요할까?
지난해 12월 4일자로 북러간 포괄적 동반자 조약이 비로소 발효되었다. 따지자면 이날 이후로 체약 양국은 자국 영토에 대한 외부의 공격에 대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통해 상호원조할 조약상 의무가 발동되었다.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침공은 2024년 8월 6일 전후였고, 젤렌스키가 북한군 파병을 언급한 것은 10월 14일이다. 국제법적으로 보자면 북한이 파병할 하등의 의무가 없는 시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떠나 과연 러시아군이 외국군의 도움을 필요로 할 상황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다. 젤렌스키로서는 러시아군이 대패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군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우리 또한 이런 논평조차 필요 없는 프로파간다에 귀 기울일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전의 전황이나 특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저런 주장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아차리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그림4_2025년 2월 8일자 쿠르스크 전황 ⓒISW
그림5_쿠르스크 우크라이나군의 배치 상황(2025년 2월 5일 현재) ⓒX에서 캡처
그림6_우크라이나 ‘접촉선’과 방어요새 ⓒX에서 캡처
[그림4]는 2.8일 현재 쿠르스크 전황이다. 출처는 워싱턴의 대표적인 네오콘 연구소 전쟁연구소ISW다. 바이든 정권의 전쟁내러티브를 설계해 온 조직이니만큼 러시아 쪽에 유리하게 볼 일은 없다. 우크라이나의 침공초기 최대 약 1,200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던 점령지는 현재 약 400평방킬로미터로 1/3로 축소된 상태다. 작년 8월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최정예 병력과 최신 장비를 쿠르스크에 집중 투입해 왔다. 적지에서 전투하는 만큼 우크라이나군의 피해 역시 막대했다. 5만이 훨씬 넘는 병력 손실과 엄청난 장비손실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10여개가 넘는 최정예 여단병력을 특히 점령지 지휘본부가 소재한 점령지 중앙의 수자 마을을 중심으로 투입하고 있다 ([그림 5]). [그림 6]의 우상 밝은 녹색지역이 점령지인데 지금은 저 1/3이라고 보면 된다. 지도상으로도 저 지역을 ‘바게닝칩’으로 러시아와 정전협상 하겠다는 젤렌스키의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림 6]의 밝은 노란색은 우크라이나가 2014년부터 구축해온 돈바스 지역의 요새를 표시한 것이다. 3중, 4중의 요새로 돈바스 전역을 둘러싸고 있다. 문제는 전략적으로 거의 아무 가치가 없는 쿠르스크전선을 연 결과, 돈바스의 저 요새 지역이 붕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10년 가까이 구축해온 요새가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먼저 2가지를 말해 준다. 첫째, 작전-전술적 차원에서 북한군에 대한 소요 자체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쿠르스크 우크라이나군은 오직 북한군과 싸워서만 ‘승리’한다. 어차피 ‘고스트 아미’이기 때문이다. 이미 12,000명중 50%가까이 손실을 입어 이 추세대로라면 3월경이 되면 12,000명 전원이 전멸하게 될 것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미 북한군 추가파병설이 나오는 차였다. 북한군이 괴멸적 타격을 입는 것에 정비례해서 쿠르스크 우크라이나군이 치명적 타격을 입고 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최대의 문제는 병력 부족이다. 한 때 100만 명에 달했던 우크라이나군이 왜 병력이 부족할까. 현재 전선에 투입된 러시아군은 7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전투 가능한 러시아병력은 2024년 말 기준 총 150만 명 규모다. 즉 투입된 병력만큼의 보충, 교대병력이 후방에 대기중인 셈이다.
둘째,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8월 일시적인 작전상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지만, 이는 동시에 전략적인 대재앙을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했듯 돈바스의 저 촘촘하기 짝이 없는 방어선이 무너지는 전략적 패배를 가속화시켰기 때문이다. 쿠르스크전선에 우크라이나 정예병이 투입되는 만큼 러시아로선 저 전선을 조급하게 정리할 이유가 없다. 적정선에서 쿠르스크 전선을 유지해야 돈바스전선이 더 빨리 붕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지금의 쿠르스크 점령지 3분의 2를 탈환했지만 무리해서 총공세를 전개할 이유가 없다는 말인데, 이런 전략적 조건에서 외국군대 예컨대 북한군이 왜 필요할까.
셋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정치적 조건이다. 북한군의 참전이 사실이라면 푸틴으로서는 나토군의 직접 참전을 비난하다거나 혹은 3차 세계대전을 경고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스스로 초래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설정한 이번 전쟁의 최우선 정치적 목표는 러시아의 안전보장이다. 그래서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중립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내에 반러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탈나치화’ 나아가 군사적 능력을 박탈하기 위해 ‘비무장화’ 같은 조건을 내걸었다. 이 연장에서 유럽국가 일부에서 말하는 ‘평화유지군’ 대러 파병에는 무력사용도 불사할 것이라고 러시아가 이미 천명한 바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문제의 ‘비국제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 만일 북한군이 존재한다면 스스로 설정한 조건에 상충되는 것이다.
결국 위 3가지 기준, 작전-전술적 조건, 전략적 조건, 그리고 정치적 조건 그 어느 층위에서도 북한군을 불러들일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이 실은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이 주절주절 흘린 파병 증거를 검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사실 북한이 ‘절대’ 파병 못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정 조건이 되면 특히 북러조약이 이제 발효된 상황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금은 그런 조건이 전혀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의 조건에서 러시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북한의 병력이 아니라 북한의 ‘인력’이다. 노동력 만성 부족이 심화되는 러시아 경제 상황에서 특히 그러하다. 설사 그것이 북한 공병이라 할지라도 시베리아 개발과 전후복구 사업에 필요하다면 러시아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인력회사를 통해 들리는 말로 결코 적지 않은 수의 북한 노동력이 실제 파견되어 있다고 한다. 파병이 아니라 파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