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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4-10 07:1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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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부터 밝힌 촛불, 잊지 못할 13장면

김 영 란 기자  자주시보 4월 9일 서울  



▲ 윤석열이 파면되자 관저 앞에서 환호하는 시민들.  © 이호 작가

 

지난 4일 오전 11시 22분 윤석열이 파면됐다. 

 

촛불행동은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부터 파면의 순간까지 그리고 지금도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2022년 8월부터 매주 토요일 시청역과 숭례문 사이 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촛불대행진’(촛불대행진)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 직전까지 117차까지 진행됐다. 

 

계엄 다음날인 2024년 12월 4일부터 윤석열이 파면된 2025년 4월 4일까지 매일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일요일은 제외)

 

윤석열 파면 이후 ‘민주정부 수립과 내란세력 청산’의 구호 아래 제2의 촛불대행진을 시작했다. 

 

3년여 시간 동안 잊지 못할 13장면을 돌아본다.

 

1. 선제탄핵의 촛불을 들다···2022년 3월 26일

 

2022년 3월 26일 오후 5시 청계광장에서 촛불이 켜졌다. 

 

바로 이 촛불집회가 윤석열이 헌법재판소에서 언급한 선제탄핵 집회이다. 당시 윤석열은 당선인 신분으로 대통령 취임 전이었다. 

 

1,500여 명의 시민은 “비리, 불통 윤석열 선제탄핵”, “윤석열 OUT!”, “청와대 국방부 이전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낙담했던 사회의 분위기를 바꾼 촛불집회였다. 그 후 매주 토요일 극우보수세력의 방해를 뚫고 청계광장,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촛불집회가 계속 열렸다.

 

▲ 2022년 3월 26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 김영란 기자

 

2. 1차 촛불대행진이 시작되다···2022년 8월 6일

 

촛불행동은 2022년 8월 4일 전면적인 윤석열 퇴진 투쟁에 들어간다고 선포했다. 이틀 뒤인 6일 촛불행동은 1차 촛불대행진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에서 타오른 촛불은 대전, 부산, 광주, 군산, 대구, 제주 등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 1차 촛불대행진.  © 곽성준 통신원

 

3. 30만이 모인 첫 전국 집중 촛불대행진···2022년 10월 22일

 

윤석열 퇴진을 바라는 국민은 서울로 모이자는 촛불행동의 호소에 연인원 30만 명이 서울시청과 숭례문 사이 대로에 집결했다.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국민의 윤석열 퇴진 요구가 얼마나 높은지 확인하는 날이었다. 

 

이때부터 촛불행동은 매월 세 번째 토요일마다 전국 집중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당시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는 “우리는 모두 촛불 가족이다. 서로 한번 잡은 손, 끝까지 놓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국민은 윤석열과 적폐 일당들의 권한을 완전히 박탈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 말처럼 3년 동안 촛불국민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투쟁해 윤석열을 파면했다.

 

▲ 2022년 10월 22일 첫 전국 집중 촛불대행진 모습.  ©뉴시스 조성봉 기자

  

4. “퇴진이 추모다”···2022년 11월 5일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가 발생했다.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인데 윤석열 정권은 책임을 회피했다. 또한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를 차려 희생자를 모독하고 국민을 기만했다.

 

이에 촛불행동은 종교단체 등과 함께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윤석열 정권을 향한 분노를 담아 시민촛불을 개최했다.

 

6만여 명의 촛불국민은 “국민이 죽어간다, 이게 나라냐! 퇴진이 추모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윤석열을 반드시 끌어내리겠다고 다짐했다.

 

  © 김영란 기자

 

5. 양회동 열사의 유지를 잇겠다고 다짐한 2023년 5월 6일

 

2023년 5월 1일 노동절에 건설노동자이자 촛불행동 회원인 양회동 열사가 분신했다. 양회동 열사는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 정책, 노동탄압, ‘건폭몰이’에 항거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양회동 열사는 분신 다음 날인 5월 2일 운명했다.

 

궂은 비가 내렸던 38차 촛불대행진에서 5천여 명의 촛불국민은 양회동 열사가 남긴 ‘윤석열을 꼭 무너뜨려 달라’라는 유지를 가슴에 새겼다. 

 

이날 촛불국민은 “열사의 염원이다! 윤석열을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양회동 열사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까지 행진했다.

 

촛불행동은 2024년 양회동 열사를 명예최고대표로 추대하며 정신을 기리고 있다. 

 

▲ 송찬흡 건설노조 부위원장이 발언하는 모습.  ©이인선 기자

 

6. “총선 압승 후 쉼 없이 몰아쳐 가자”···2024년 4월 13일

 

4.10총선을 압승으로 이끈 촛불국민은 총선 후 4월 13일 열린 85차 촛불대행진에서 “틈을 주면 살아난다, 쉬지 말고 몰아치자!”라고 외치며 윤석열 탄핵으로 거침없이 나가자는 결심을 다졌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정치인들이 영수회담을 언급한 것이 윤석열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후 영수회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확산됐고, 이재명 대표는 영수회담에서 윤석열에게 국민의 준엄한 요구를 정확히 전달했다. 

 

4.10총선에서 국민의 명령을 국회에서 집행할 21명의 촛불후보가 당선됐다. 촛불후보는 이후 ‘촛불행동과 함께하는 국회의원 모임’ 등을 꾸리며 윤석열 탄핵을 위해 적극 활동했다.

 

한편 촛불국민은 총선을 앞두고 열렸던 83차 촛불대행진에서 윤석열의 대파 한 단 값을 조롱하며 ‘대파’ 행진을 하면서 총선 압승의 기세를 높였다.

 

  © 김영란 기자

 

▲ 83차 촛불대행진 모습. 시민들이 대파를 들고 참가했다.  © 이인선 기자

 

7. 해병대도 윤석열 퇴진 전선으로···2024년 6월 1일

 

정원철 해병대 예비역연대 회장은 2024년 6월 1일 열린 92차 촛불대행진 정리집회에서 “해병대원 특검을 거부한 윤석열 정권에 참수작전을 선포한다”라면서 “윤석열을 탄핵하자”라고 말했다.

 

채수근 해병은 2023년 7월 19일 집중호우로 실종된 민간인을 수색하다가 급류에 휘말려 사망했다. 채해병이 사망한 지 10개월 만인 2024년 5월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병대 예비역연대는 이때부터 촛불국민과 함께 어깨 걸고 윤석열 퇴진 투쟁을 벌였다.

 

▲ 해병대 예비역연대 정원철 회장.  © 이인선 기자

 

8. ‘윤석열 탄핵 온라인 항쟁’ 시작하다···2024년 6월 22일

 

6월 22일 열린 95차 전국 집중 촛불대행진에서 촛불행동은 윤석열 탄핵 즉각 발의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을 소개했다. 소개된 다음 날에 5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동의청원을 제기한 사람은 권오혁 촛불행동 공동대표였다.

 

최종 143만 4,784명의 국민이 청원에 동의했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국민이 몰려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국민동의청원의 결과 국회 법사위는 7월 19일, 26일 두 번에 걸쳐 윤석열 탄핵 청문회를 개최했다. 청문회를 통해 윤석열, 김건희의 범죄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 한 시민이 '윤석열 탄핵 소추 5만 국민동의청원'에 동참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큐알코드를 찍고 있다.  © 김영란 기자

  

9. ‘윤석열 탄핵 100일 총력운동’ 결의하다···2024년 8월 31일

 

“국민이 앞장서서 윤석열을 100일 안에 탄핵하자!”

 

8월 31일 열린 105차 촛불대행진에서 촛불국민은 2024년 안에 윤석열을 탄핵하겠다는 결심을 천명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촛불행동 지부는 자기 지역에서 ‘윤석열 탄핵’을 바라는 국민, 단체와 ‘탄핵 유권자 대회’를 열 것과 탄핵 현수막 달기 운동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9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의 밤’을 시작으로 해서 10~11월 촛불행동 지부가 있는 전국 곳곳에서 유권자 대회가 열렸다.

 

  © 이인선 기자

 

10. 내란 이후 매일 밝힌 촛불문화제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촛불행동은 회원들에게 국회 앞 집결을 호소했다.

 

국민의 투쟁으로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12월 4일 해제됐으나 촛불행동은 그날부터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14일까지 매일 촛불집회를 국회에서 개최했다. 이때 가수 백자 씨의 노래 「탄핵이 답이다」가 전국을 강타했다.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에는 헌재 인근에서 2025년 4월 3일까지 ‘윤석열 파면! 국힘당 해산! 촛불문화제’가 매일 열렸다.

 

▲ 2024년 12월 7일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 김영란 기자

 

11. 가수 이승환도 함께한 촛불문화제

 

2024년 12월 13일과 2025년 3월 27일에 가수 이승환 씨가 촛불문화제 무대에 섰다.

 

이승환 씨의 첫 번째 공연은 2차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 상정을 하루 앞둔 날에, 두 번째 공연은 헌재가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일을 지정하지 않아 국민의 분노가 쌓여가던 시점에 열렸다.

 

‘탄핵 가수’라는 별칭에 맞게 이승환 씨가 촛불문화제에서 공연한 뒤에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탄핵심판 선고일이 확정됐다.

 

이승환 씨는 “주문을 외워보자. 내려와라 윤석열!”, “주문을 외워보자. 파면하라 윤석열!”이라고 개사해 촛불국민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었다. 

 

▲ 2024년 12월 13일 이승환 밴드의 공연 모습.   ©김영란 기자

 

▲ 이승환 밴드의 2025년 3월 27일 공연 모습.  © 이인선 기자

 

 12. 관저 앞에서 체포와 파면의 순간을 맞이하다

 

헌재가 윤석열 탄핵심판을 하는 동안 헌재 근처에서 내내 촛불문화제를 열었던 촛불행동은 윤석열 체포영장이 2차로 집행되던 1월 15일과 탄핵심판 선고일이 있던 4월 4일 한남동 관저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윤석열이 체포되는 순간, 파면되는 순간 촛불국민의 벅찬 함성이 관저 앞을 가득 채웠다. 

 

한편 국민주권당 당원과 촛불국민은 윤석열 체포영장 2차 집행을 앞두고 며칠 동안 관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했고, 탄핵심판 선고일을 앞두고는 파면 전야제를 진행했다.

 

▲ 윤석열이 체포된 날.  © 박명훈 기자

 

▲윤석열 파면이 확정되는 순간.  © 김영란 기자

 

13. 민주정부 수립, 내란 완전 청산으로 간다···134차 촛불대행진 

 

윤석열이 파면됐지만 촛불국민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윤석열이 파면된 다음 날인 4월 5일 주권자의 힘으로 민주정부를 건설하고 내란세력을 완전히 청산하기 위해 촛불국민은 거리에 섰다.

 

촛불국민은 다시 “틈을 주면 살아난다, 쉼 없이 몰아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주권자 국민이 구상하는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 134차 촛불대행진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민.  © 이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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