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 > 세계뉴스

본문 바로가기
세계뉴스

기타 | -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0-28 20:09 댓글0건

본문

최태민과 박근혜, 최진실과 박근혜, 정윤희와 박근헤, 등 지난 40년동안 한국사회를 농락한 최대의 사기극 주역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비선 실세최순실씨에게 각종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을 유출한 위법행위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좀 더 꼼곰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순수한 마음과 달리 최씨 일가가 대통령의 이름을 등에 업고 국가와 기업의 돈을 자기 돈처럼 주무르고 공무원 인사를 좌우하는 등 국정을 농단한 정황이 뚜렷해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이름 붙여진 일련의 사건들은 40년 전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최순실 게이트의 뿌리부터 현재를 일지 형태로 정리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정치권 말말말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주영재·이재덕·박용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비선 실세최순실씨에게 각종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을 유출한 위법행위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좀 더 꼼곰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순수한 마음과 달리 최씨 일가가 대통령의 이름을 등에 업고 국가와 기업의 돈을 자기 돈처럼 주무르고 공무원 인사를 좌우하는 등 국정을 농단한 정황이 뚜렷해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이름 붙여진 일련의 사건들은 40년 전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최순실 게이트의 뿌리부터 현재를 일지 형태로 정리했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업데이트합니다.

 업데이트 내역

-20161028: <20156최순실·차은택 라인광고업체 강탈 시도 의혹>을 추가했습니다.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경향신문] ‘최순실 게이트기사 타임 라인

[경향신문][디지털스토리텔링] ‘최순실 게이트관계도

1912825일 최태민 출생

-최태민은 1912년 황해도 출신으로 일제시대 경찰업무를 하다 해방 이후 승려가 된 것으로 알려짐. 부인 6명으로부터 36녀를 둠. 최순실은 5. 70년대 들어 최태민은 서울과 대전 일대에서 난치병을 치료한다는 등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임.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한 영생교를 만들어 교주로 지냄. 방민이란 가명을 쓰면서 원자경’, ‘칙사또는 태자마마라는 호칭을 자처함.

[한겨레]이름 7, 부인 6, 승려 목사 최태민 미스터리

[국민일보][단독] 최태민은 사이비 영세계교주… 목사아닌 칙사자처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19752월 최태민, 박근혜에 위로 편지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최태민)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냄.

-중앙정보부의 조사보고서도 최태민은 영혼합일법(일종의 최면술) 등 사이비 종교 행각으로 전전하던 752월말경 박근혜에게 3차에 걸쳐 꿈에 육 여사가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는 현몽이 있었다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하여라고 나옴. 최태민은 편지는 보냈지만 위로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정도였다고 현몽설부인.

197536일 박근혜, 최태민을 청와대로 부름

-편지를 계기로 청와대에서 박근혜와 만난 최태민은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고 말하며 외부 활동을 권함.

1975429일 최태민 대한구국선교단설립십자군창설

-박근혜를 만난 뒤 최태민은 목사 안수를 받고 7번째이자 마지막 이름인 태민을 얻은 것으로 알려짐. 영생교 간판을 내린 뒤 429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하고 총재가 됨. 그해 5구국기도회를 열고 6월에는 산하 조직인 대한구국십자군을 창군함. 박근혜는 두 행사에 참석함. 최태민의 즉석 제안으로 박근혜는 대한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 됨. 이후 박근혜는 구국선교단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냄.

기독교 십자군 창설의 일환으로 3일간 군사훈련을 받은 대한구국선교단(단장 강신명 목사) 소속 목사들의 퇴소식에 참석한 박근혜 명예총재가 참석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향신문 1975526일자 7

기독교 십자군 창설의 일환으로 3일간 군사훈련을 받은 대한구국선교단(단장 강신명 목사) 소속 목사들의 퇴소식에 참석한 박근혜 명예총재가 참석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향신문 1975526일자 7

1975621일 대한구국선교단 산하 구국십자군창군식이 열린 배제고등학교에서 박근혜가 명예총재 자격으로 참석해 신도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향신문 1975623일자 7면 기사

1975621일 대한구국선교단 산하 구국십자군창군식이 열린 배제고등학교에서 박근혜가 명예총재 자격으로 참석해 신도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향신문 1975623일자 7면 기사

19764구국여성봉사단새마음봉사단출범

-박근혜가 총재를 맡은 구국여성봉사단등 유사 단체도 여럿 생김. 최태민은 구국선교단을 비롯해 여러 단체를 통합해 새마음봉사단을 만들고 박근혜를 총재로 추대. 박근혜 초창기 경력의 핵심은 새마음갖기운동을 펼친 새마음봉사단활동임. 박근혜와 최태민은 새마음갖기운동이라는 전국민 정신개조운동을 펼침.

 1976년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1977121새마음갖기운동본부발족

-이날 경향신문은 5면 기사에서 새마음갖기국민운동본부(본부장 최태민)19일 발족되었다. 국민의 도의심 앙양 등 정신개혁을 목표로 전개될 새마음갖기운동은 야간무료진료봉사 등 사회사업에 앞장서온 대한구국봉사단, 구국여성봉사단, 서울시의사회 등이 주관하고 서울시한의사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등 각 사회단체 등이 협찬한다. 새마음갖기운동의 제1차 사업으로 경로사상, 충효사상의 지변확대를 설정, 경로병원을 개설하고 시범경로마을을 설치한다.”고 소개함

 1977316새마음갖기범국민궐기대회

-이날 궐기대회에 참석한 박근혜는 충효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새마음갖기운동이 어느 단체나 지방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전체의 국민철학으로 심어져 나갈 때 이 땅은 이상적 복지국가가 될 것이라며 참가자들을 격려함. 이런 궐기대회는 전국 곳곳에서 열렸으며 수천, 수만 명의 학생, 시민들이 동원됐고 박근혜는 모든 행사에 직접 참석함.

-박근혜는 ··를 강조하는 새마음갖기운동을 통해 국민들이 자신에게 충성하게 만들었음. 새마음갖기운동 행사장에서 나이든 교장, 교수들이 박근혜에게 90도로 절을 했을 정도. 단순한 정신개조운동으로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기업별, 학교별, 지역별 조직을 촘촘하게 만들어 이런 조직들을 자신의 독자적 권력 기반으로 삼으려함 것으로 보임.

[오마이뉴스]새마음운동으로 유신독재의 주역이 된 박근혜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19779최태민 게이트친국한 박정희

-최태민은 박근혜와 친분을 쌓은 이후 각종 이권 개입과 횡령, 사기 및 융자 알선 등 권력형 비리를 저지름. 여성과의 스캔들 의혹도 끊이지 않았음. 최태민에 대한 1977년 중앙정보부 수사자료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있음. 당시 봉사단 관계자는 한마디로 미니 청와대였다고 함.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최태민씨가 영애(박근혜)의 힘을 업고 범법 행위를 저지른다는 보고서를 제출. 박정희는 직접 최태민을 심문함. 대통령 서재에서 진행한 친국엔 중정의 김재규 부장과 백광현 국장이 동석. 박근혜도 참석해 그런 일 없다며 최태민을 옹호했다는 설도 있음. 박정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검찰에 넘긴 뒤 검찰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으나 최태민은 새마음봉사단의 명예총재(총재는 박근혜)를 맡는 등 박근혜 옆을 지킴.

2007720일 미국 외교전문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이날 미 외교전문에는 작고한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의 성장기 시절 몸과 정신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그의 아이들은 그 결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루머가 무성하다고 적혀 있음.

[위키리크스]미 외교전문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비선실세최태민…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과 흡사

-최태민이 봉사단의 운영비를 조달한 과정은 최순실의 미르-K재단 설립 과정과 흡사하다. 중앙정보부 보고서를 보면 “78714 운영비 조달목적으로 ‘####()’ 회장 최모 등 10명의 실업인을 운영위원으로 위촉해 운영위원회를 발족한 이래 계속 증원해 이듬해 10월에는 국내 재벌급 실업인을 거의 망라한 60명 선에 육박, 1인당 입단 찬조비 2000~5000만원에다 매월 200만원씩 운영자금을 조달했다고 나옴. 또한 장학기금과 운영기금 및 기타행사 지원비 등 명목으로 수천만원씩 개별적으로 갹출했는데 운영위 멤버가 아닌 기업체에 대해서도 박근혜의 이름을 팔아 동일명목으로 수천만원씩 갹출한 것으로 나옴.

[미디어오늘]최순실 게이트, 40년 전 최태민 수법 그대로

1970년대 중후반

-박정희 대통령, ‘최태민 마크맨으로 최필립(1928-2013,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박근혜를 수행토록 지시. 김계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최필립을 추천한 것은 의전수석 최광수였는데, 최씨 몇이 몰리게 되면서 최태민과 최필립이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1976년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1979327일 박근혜 첫 저서 <새마음의 길> 출간 기념회

-한국일보 백상기념관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는 학계, 언론계, 예술계 등에서 150여 명이 참석. 이 책은 구국여성단 총재를 맡았던 박근혜가 19775월부터 197811월까지 새마음갖기 도민궐기대회, 직장불교인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새마음 중고등학생연합발대식 등에 참석해 발표한 연설문 21편을 모아 정리한 것. ‘새마음의 길의 영문판 <The New Spirit Movement>19797월 발행. <새마음의 길>2월 출간된 이후 6개월만에 50만부나 보급.

19796

최순실, 단국대 청강. 당초 단국대 졸업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청강생으로 학사학위를 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짐. 청강생이었지만 새마음봉사단 대학생 총연합회장으로 활동.

[TV조선]최순실 단국대 졸업생 아닌 청강생본명은 최필녀

1979610새마음 정신으로 사회정화최순실의 첫 언론 등장

-새마음봉사단 총재 박근혜는 이날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 주재로 한양대에서 열린 새마음제전에서 협동단결하여 학교와 사회에 새마음의 정신을 심화시키고 그 뿌리를 깊이내릴 때 우리의 사회정화는 더욱 확실해질 것이라고 강조함.

-155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의 개회선언은 당시 단국대 청강생이던 최순실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장이 함. 최순실의 이름이 처음으로 언론에 등장한 때이자 최순실과 박근혜가 처음 만난 때로 알려짐.

1979611일자 경향신문 7. 박근혜의 오른팔 뒤로 보이는 이가 최순실이다

1979611일자 경향신문 7. 박근혜의 오른팔 뒤로 보이는 이가 최순실이다

19801월 김재규의 항변 “10·26의 한 원인은 최태민과 박근혜의 전횡 때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보충서에서 박근혜가 명예총재로 있던 구국여성봉사단이 많은 부정을 저질렀고 이를 박 대통령에게 직보했지만 묵살당한 일이 10·26 사건의 중요한 동기였다고 밝힘.

김재규 항소이유보충서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박 대통령이나 유신체제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가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지만 꼭 밝혀둘 필요가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民情首席) 박승규 비서관조차도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읍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전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시킨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여,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 놓은 일이 있었읍니다. 중정본부의 조사보고서는 현재까지 안전국(6)에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김재규 "10.26 동기 중 하나는 박근혜-최태민 때문"

198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